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075_001
- ㆍ입수처
- 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김영유)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박동로 간찰 / 簡札
- ㆍ발급자
-
박동로(朴東輅,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김생원(金生員,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3월 2일간지연도 丁丑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4.7 × 4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정축년 3월 2일에 소제 복인(少弟服人) 박동로(朴東輅)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정축년 3월 2일에 소제 복인(少弟服人) 박동로(朴東輅)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少弟服人’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면서 당시 복상(服喪)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朴進士 候狀’이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성이 박(朴)씨이면서 진사(進士)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金生員 旅案 入納’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생원(生員)이면서 당시 출타하여 객지에 나와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동 문중 소장의 김생원이 수신자인 간찰을 참조하면 그는 향청(鄕廳)의 좌수(座首)를 역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번 곡반(哭班)에서 서로 삽시간에 만났던 일은 지금까지도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요즘같이 청화(淸和)한 계절에 객지에서의 안부가 연일 좋은지 물었다. 자신은 이전대로 지내고 있지만 모친의 환후가 갑자기 심해져 마음 졸이며 지내는 근황을 전했다. 자신의 집안이 가난한 상황은 상대도 잘 알 것인데, 이번에 흉년을 당한데다가 누차 혼상(婚喪)의 일을 거치며 더욱 여지가 없던 가운데 어버이의 병환도 위극하여 약물이나 미음을 댈 자금도 손 쓸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서, 개색곡(改色穀)을 얻기를 청하는 일로 지난번 정장(呈狀)하였지만 아직 순상(巡相)의 제사(題辭)를 얻지 못했으므로, 상대가 나서서 이에 대한 허가 제사를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곡반’은 국상(國喪)이 났을 때 곡을 하기 위해 사대부 이상이 모이는 반열(班列)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당시 국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개색’은 개색미(改色米) 또는 개색곡(改色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당시 세곡(稅穀) 운반 조운선이 침몰하여 수침(水浸)된 미곡 또는 병선(兵船)에 적재되었다가 3년 묵은 군량미 등을 해당 지방민에게 나눠주고 개색하는 것을 가리킨다. 발급자는 자신의 절박한 상황에 보탬이 되고자 이 개색곡을 얻기 위해 감영에 정장하였고,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좌수로 있던 상대에게 힘을 써 주기를 부탁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개색곡의 처리와 관련한 지방 행정의 실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제목 없음
省式 向日哭班霎奉 迨用依依 卽伏惟淸和 旅中起居 連獲萬安 仰慰且遡 少弟 姑依前套 而慈患猝添且谻 方事焦迫 私情煎悶 何可形喩 且中鄙家之貧窶 卽老兄所稔知 當此饑歲 屢經婚喪 益無餘地中 有此親憂之危谻 凡所藥餌糜粥之資 實無借手處 以改色請得事 頃呈一狀 尙未蒙題 渴悶之極 泄菀無已 顧此百口生死 農作廢棄 姑不足暇論 而望七親病 若是危綴 必欲得斗水之捐 巡相若知此危迫之狀 亦必垂憐之不暇矣 幸望從間細陳 此間情私之萬萬危急 繼以前呈狀 力請題給 以如依所訴受題之地 如何如何 改色旣異 別還之類 雖泛然轉囑 亦多有得用之道 況如親患懇乞 則在官長 亦關於惠鮮之政 更望極力周章 期得準題 至仰至仰 議送則頃因從叔家 已爲入送 想留在營中 今不更呈 至於狀中所請 畧之又畧 必依所請許題 毋或減漏之地 尤望尤望 餘 侍湯中心擾 堇草 不宣 伏惟下照 謹候狀上 丁丑 三月 初二日 少弟 服人 東輅 狀上
金生員 旅案 入納 朴進士 候狀 省式謹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