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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17_01_A00073_001
- ㆍ입수처
- 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김영유)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06년 윤장렬 간찰 / 簡札
- ㆍ발급자
-
윤장(尹長烈, 1743~?,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김생원(金生員,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보통 ‘金生員’에게 보낸 간찰이 있으므로 수신자는 향청(鄕廳)의 좌수(座首)를 역임한 김생원으로 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06년 7월 7일간지연도 丙寅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2.5 × 46.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병인년(1806) 칠석(七夕, 7월 7일)에 윤장렬(尹長烈, 1743~?)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병인년(1806) 칠석(七夕, 7월 7일)에 윤장렬(尹長烈, 1743~?)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한 관계호칭 용어를 생략하고 있고, 본문 내용의 정황상 평교간이거나 발급자가 수신자보다 지위나 연배가 조금 더 높은 관계 정도로 추정된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지만, 동일 발급인의 여타 간찰 가운데 피봉이 있는 것을 살펴보면, 보통 ‘金生員’에게 보낸 간찰이 있으므로 수신자는 향청(鄕廳)의 좌수(座首)를 역임한 김 생원으로 추정된다.
상대와 동쪽과 서쪽 끝으로 떨어지게 되어 매양 옛날을 생각해도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다고 하면서,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에 부친의 기후는 어떠하신지,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상대의 안부도 어떠한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상대는 지금쯤이면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있을 것이지만 자신은 황량한 변방을 지키게 된 지 이미 반년이 지났는데도 피폐한 고을에서 진쇄(振刷)하는 일도 대책 없는데다가 몸까지 쇠하여 집으로 돌아가 생각만 간절하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곳이 강릉[東藩] 지역과 비등하다고는 하지만, 30년 전의 일 때문에 동분서주하며 번번이 고된 상황을 면하지 못하니 이는 모두 운수의 소관인지라 어찌하겠냐고 했다. 경재(京第)로 가는 인편을 통해 편지를 부치지만 언제쯤 상대가 받아볼 수 있을 것이겠냐고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끝도 없지만 등불 아래에서 간신히 천초(倩草)한다고 하였다.
본문에서 ‘상대와 동쪽과 서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고 언급한 말은 정황상 당시 강계부사(江界府使)에 제수되어 부임한 뒤 수신자는 강릉에, 발급자는 강계에 떨어지게 된 상황을 표현한 말로 보인다. 또한 그가 강계부사에 제수된 시기가 1805년 10월 25일이고 하직 후 부임한 시기는 같은 해 11월경이므로 본문에서 자신의 근황을 언급하며 ‘황량한 변방을 지키게 된 지 이미 반년이 되었다’라고 할 수 있다.
발급자 윤장렬은 자는 상보(祥甫), 본관은 해평(海平), 부친은 윤정동(尹挺東)이다. 1765년(영조 41) 을유 식년시 을과 1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안주목사‧동래부사‧대사간‧호조참판‧형조참판‧강릉부사‧강계부사‧병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1803년 7월에서 1805년 7월까지 강릉부사를 역임하였고, 이 해 10월 25일에 강계부사에 제수되어 11월 22일에 하직하면서 장궁(長弓) 등을 하사받은 기록이 있다.
제목 없음
東之涯西之角 落落已矣 夢亦不得 每念前日 有若先天 未諳老熱 庭候若何 侍履復何似 計今卸歸 想可太康 而我則忽戍荒塞 已經半歲 弊局振刷 固已無計 而衰相轉甚 歸思徒切 世稱相等於東藩 而係是三十年前事 東西奔走 輒不免苦狀 都關命數 奈何 耿耿之極 玆成一書 憑撥從京第 要以入禠 未知何當照至也 所言何限 而火下艱倩 不宣狀式 丙寅 七夕 長烈 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