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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6월 16일에 복인(服人) 심우(沈(金+㝢))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服人’으로만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면서 당시 복상(服喪)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筆谷 沈進士’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성이 심(沈)씨이면서 당시 필곡(筆谷)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金生員 案下 回上’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생원시에 입격했음을 알 수 있다. 동일 문중 소장 여타 간찰의 피봉을 살펴봤을 때 동일 수신자로 추정되는 다수의 ‘김 생원’ 간찰에서 거주지가 ‘반암(盤巖)’으로, ‘좌수(座首)’로 현주(懸註)된 기록이 있는 것을 참조할 수 있다.
격조함이 오래되어 그립던 차에 뜻밖에 상대의 편지를 받게 되어 위로되고 시원한 마음이 들었는데, 하물며 무더위에 임소(任所)에서의 생활이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더할 나위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병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 오랫동안 신음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렸다. 상대가 보내준 세 종의 물건은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고, 부채 한 자루를 보내니 직접 만나는 것을 대신할 바탕으로 삼아달라고 했다.
본문에서 발급자가 수신자의 안부를 물으며 “임소에서의 체리[任履]”라고 한 것은 수신자가 당시 관직이나 어느 직책을 맡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피봉 등에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황상 당시 향청(鄕廳) 좌수 직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좌수는 조선시대 향청(鄕廳)의 수임인데, 조선후기에는 수령의 보좌로서 행정적 역할의 성향이 컸던 직임이었다. 수신자는 이 직임에 있으면서 상대에게 세 종의 선물을 보내 주었고, 발급자는 이에 대해 부채를 답례로 보내주었다. 당시에는 겨울철, 특히 연말에 많이 주고받던 책력(冊曆)과 함께 여름철은 부채를 진상‧선물품으로 많이 선호되었다. 특히 단오절 상간에 왕래하던 부채는 ‘절선(節扇)’ 또는 ‘절삽(節箑)’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당시 이를 매개로 하여 인맥을 형성했던 관행을 선정(扇政)으로 불리기도 했다. 본문의 내용을 통해 당시 사인들 간에 왕래하던 물종 및 물품을 주고받던 풍습이나 관행을 엿볼 수 있다.
※ 피봉의 지명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筆谷 또는 笙谷으로 보입니다.
제목 없음
積阻懷耿 匪意惠翰 落入手中 慰浣倍品 況又溽暑 任履淸晏者乎 服人 病不離身 長在叫囈 此生良苦 奈何 寄惠三種 殊非薄住所可得 如非不遺勤意 何以辦此 感荷之極 非爲物也 一扇伴呈 時作替面之資 如何 餘歸个立討 姑不宣狀例 乙卯 六月 十六 服人 우(金+㝢) 頓
金生員 案下 回上 筆谷 沈進士 謝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