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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17_01_A00063_001
- ㆍ입수처
- 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김영유)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김만유 간찰 / 簡札
- ㆍ발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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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유(金萬綏,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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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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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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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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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31 × 39.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정축년 7월 1일에 복제(服弟) 만유(萬綏)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省式 累日相會 迨不能忘 或雨或晴 蒸氣尤難堪 三百險道 行李果無遲滯之患 而到蓬閣後 亦能無飮暑之病耶 爲之昂慮不淺 服弟 一病支離 飮啖有若全廢 鄕山之思 轉苦而已 都會不遠 幸勿長對黎媧 着意做工 如何 老當益壯一句語 恐爲頂門一針也 好笑好笑 不宣 謹候狀上 丁丑 七月 初一 服弟 萬綏 拜手
蓬閣旅榻 侍史 入納 省式謹封
제목 없음
정축년 7월 1일에 복제(服弟) 만유(萬綏)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服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면서 당시 복상(服喪)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발급자에 관한 정보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蓬閣旅榻 侍史 入納’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거주지를 떠나 봉각(蓬閣, 원주감영 蓬萊閣)에 머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대와 여러 날 모임을 가진 일은 여태 잊히지 않는다고 하면서, 습하고 더운 날씨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요즘 날씨에 삼백 리의 험난한 길을 떠나 지체되는 근심 없이 봉각에 도착한 뒤 더위 먹은 병은 없는지 등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병이 질질 끌며 낫지 않아 먹고 마시는 일도 전부 폐하고 있으면서 고향 생각에 더욱 괴롭다고 하였다. 도회(都會, 公都會)가 머지않아 있을 것이니 미녀[黎媧]만 장시간 만나지 말고 착실히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면서, ‘늙을수록 더욱 씩씩해야 한다[老當益壯]’는 말이 아마도 정문일침(頂門一針)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본문에서 언급된 ‘도회’는 ‘공도회’를 가리킨다. 공도회는 승보시(陞補試)와 사학제강(四學製講)과 함께 생진과[소과]에 직부(直赴)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시험으로 이에 합격하면 바로 소과 복시(覆試)에 직부되었다. 승보시와 사학제강은 주로 사학유생(四學儒生)을 대상으로 사학교수(四學敎授)나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 보인 시험이라면, 공도회는 팔도(八道)와 양도(兩都, 개성‧강화) 유생을 대상으로 감사(監司)[실질적으로 도사(都事)]와 양도유수(兩都留守)가 주관했던 시험인데, 매년 1차례 시행되었다. 이 편지가 발급된 시기가 7월이므로 당시 공도회는 이 시기 즈음에 설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여와(黎媧)’는 ‘미녀’를 가리키는 말로, 중국 송나라 때 지조가 매우 굳은 관리였던 호전(胡銓)이 여와라는 미녀에게 반해 관계를 가졌다가 모욕을 당한 일이 있었다. 발급자는 이 고사를 가져와 상대가 공도회를 치르기 전까지 학업에 열중하라는 격려를 해학적으로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