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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020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05년 윤치영 간찰 / 尹致永 簡札
- ㆍ발급자
-
윤치영(尹致永, 1764~?,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김 생원(金 生員,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05년 11월 18일간지연도: 乙丑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9.5 × 40.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05년(을축) 11월 18일에 반암(盤巖)의 윤치영(尹致永)이 강릉(江陵)의 김(金) 생원(生員)에게 보내는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을축년(1805) 11월 18일에 반암(盤巖)의 윤치영(尹致永)이 강릉(江陵)의 김(金) 생원(生員)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주요 내용은 윤치영이 김 생원에게 부친 윤장렬(尹長烈)이 강계부사(江界府使)에 임명되어 1300리 눈길을 가는 일로 걱정을 전하고, 강계(江界)는 강릉에 비해서 읍의 폐단이 곱절로 많고 막객(幕客)에게 공적으로 지급해야 할 부비(浮費) 때문에 걱정하는 상황을 알리는 것이다.
윤장렬은 1803년에 강릉부사에 임명되어 2년간 재임하였고, 이때부터 수신자와 인연을 계속 이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지방관이 해당 고을에서 교체된 후에도 고을 사대부와 교유를 이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간찰이다. 윤치영(1764~미상)의 자는 계문(季文)이고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 문과 병과 28위로 급제했다. 정언, 지평, 이조좌랑 등을 역임했다.
원문
金生員宅回納
盤巖 尹持平謝狀
卽方意外獲承惠狀 以審寒冱侍候增衛 仰慰 而第所帶想多惱撓 近復如何 奉行之勤 不在新舊之列 去益恪謹 如何 多般云云 不足爲怒 一世皆然 非獨江陵鄕俗矣 如何 服人依前書樣子 無足仰喩 家君行事 自多窘速 差俟新延之來 欲一辭朝 三四當發程 千三百餘雪路 雖是路文行次 伏悶 萬端邑弊 一日難言 比之江陵官況或倍 而五幕客料布 自其中皆出 公下浮費 不知爲幾何 愁亂奈何 官廩小米七十八石 大米十三石 黃淸五 白淸二斗五升 雉鷄柴炭戔 一年錢条 民庫爲五十金 官庫爲五十金 此外小小 合爲統計 一年八九千金 而用處浩煩 反不如貴邑之無策 可笑可笑 古之廩捧 謂之雄府 而百弊層生 民小還多 莫莫之一年 當納条爲五十斤 是故漸漸况薄 罔有紀極 以若衰境精力 萬無收拾蘇瘼之策 幕客倉卒驅去 皆是食蟲 未知彼中如執事崔院長幾箇傑士之有也 好呵好呵 惠饋種伏受 良感良感 萬分極撓 姑不備例 乙丑至月十八日尹致永拜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