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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07_01_A00045_001
- ㆍ입수처
- 이규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등장(等狀)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9년 홍병면 등 등장 / 洪秉勉 등 等狀
- ㆍ발급자
-
홍병면(洪秉勉)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79년 4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85.5 × 55.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79년 4월에 도하면(道下面) 송정동(松亭洞)에 홍병면(洪秉勉) 등 6명과 용정동(龍井洞)에 김병탁(金秉倬) 등 4명이 삼척부사(三陟府使)에게 올린 등장(等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879년 4월에 도하면(道下面) 송정동(松亭洞)에 홍병면(洪秉勉) 등 6명과 용정동(龍井洞)에 김병탁(金秉倬) 등 4명이 삼척부사(三陟府使)에게 올린 등장(等狀)이다. 본 고을에 황장(黃腸)을 운반하는 군(軍)은 정해진 규식이 오래되었는데 도하면 지흥동(智興洞)에서 이미 정해진 규식을 살피지 않고 전에 없던 규례를 만들어서 여러 차례 무고로 정소(呈訴)하였다. 이에 송정동과 용정동에서 여러 가지 별도의 역(役)을 거론하면서 정소하자 삼척부사가 이전대로 시행하고 만일 다시 침탈하면 별도로 엄히 처벌한다는 제음(題音)을 내렸다. 그런데 재작년에 효가동(孝街洞)에서 4명의 품삯을 옮겨 징수하는 내용으로 다시 무고로 정소하여 송정동임(松亭洞任)을 잡아와 대령하라는 제음이 내려지자 지흥동에서 전후로 번거롭게 정소한 것이 계속되었다. 이에 송정동과 용정동에서는 전에 받은 제음을 점련하여 소장을 올리니 살펴본 후에 지흥동·효가동·동회동(桐淮洞)·나안동(羅鴈洞)의 두민(頭民)을 관정(官庭)에 불러와서 사실과 거짓을 대질해 줄 것을 삼척부사에게 요청하였다. 4월 7일에 삼척부사는 조사하고 아뢰어 바로잡으라는 처분을 좌수(座首)와 공형(公兄)에게 내렸고, 다음날인 4월 8일에 삼척부사는 이전 제음에서 호(戶)의 많고 적음에 따라 나누어 정하였는데 만약 다시 정소하는 폐단이 있으면 해당 동임(洞任)을 엄하게 처벌하고 감영에 보고하겠다는 처분을 추가로 내렸다. 등장은 조선시대 백성들이 2인 이상이 연명(連名)하여 소송(訴訟)·청원(請願)·진정(陳情) 등을 위해 지방 수령에게 올리는 문서이다. 지방 수령은 등장의 내용을 확인한 후에 등장의 여백에 처분의 내용인 제음(題音)을 적어 내려 보냈다. 등장을 통해 마을 사이에 발생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 수령에게 등장을 올려 요청하는 과정과 이에 대해 지방 수령이 내린 처분을 확인할 수 있다.
제목 없음
道下面松亭龍井民人等
右謹言情由事段 本邑黃腸曳運軍事 不知幾何年由來之完式也 今此本面智興洞 不顧已定之規 敢生無前之例
累次構誣呈訴是乎故 矣洞不得已 諸般別役 枚擧仰瀆是乎則 題音內 依前施行是遣 如有無例更侵者 別般嚴治矣
以此憑考敎是乎所 矣洞依前雇軍是乎遣 智興洞小不顧念 臨發之際 誣訴官庭是加可 至於捉枷之境 而依前擧行矣 不
意再昨日良中 孝街洞 以四名雇價移徵之意 更爲誣訴 則題音內 果如所訴 松亭洞任捉待敎是乎尼 彼洞前後煩訴 若此不已
則洞何以成樣 法何以措施乎 前呈題音貼連 齊聲仰籲 參商敎是後 智興孝街桐淮羅鴈洞頭民等 招致官庭 卞質
情僞 以爲安堵之地 千萬望良爲只爲
行下向敎是事
城主 處分
己卯四月 日
松亭洞 洪秉勉 朴周臣 洪秉績 金源大 金秉翼 崔東昇
龍井洞 金秉倬 金秉佑 沈來錫 鄭仁吉 等
[題音]
査稟歸正向
事
初七日
座首
公兄
[뒷면]
依前題戶之多
少分定是矣
若有更訴
之弊 則該
洞任 斷當
嚴治報
營向事
初八日 追題
行使[着押]
[三陟府使之印] 7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