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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07_01_A00044_001
- ㆍ입수처
- 이규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등장(等狀)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9년 홍병면 등 등장 / 洪秉勉 等狀
- ㆍ발급자
-
홍병면(洪秉勉)
김병익(金秉翼)
홍병속(洪秉績)
최준상(崔俊祥)
홍병남(洪秉楠)
박주극(朴周極)
김원익(金源益)
권봉규(權鳳圭)
김병모(金秉謨)
최택상(崔宅祥)
김춘석(金春碩)
나우만(羅佑萬)
정억기(鄭億基)
김현만(金顯晩)
김병도(金秉倬)
김병우(金秉佑)
심래석(沈來碩)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9년 3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己卯閏三月 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89 × 58.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79년 윤3월에 도하면(道下面) 송정동(松亭洞)과 용정동(龍井洞)에서 삼척부사(三陟府使)에게 올린 등장(等狀), 황장의 역을 조정해달라고 청원하는 내용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879년 윤3월에 도하면(道下面) 송정동(松亭洞)에 홍병면(洪秉勉) 등 14명과 용정동(龍井洞)에 김병탁(金秉倬) 등 3명이 삼척부사(三陟府使)에게 올린 등장(等狀)이다. 홍병면과 김병탁 등은 송정동과 용정동이 바닷가와 산 아래 연로(沿路)에 있어서 어염세(漁鹽稅)와 관재(官材)를 수송하는 역(役)이 있고 크고 작은 손님이 행차할 때에 당치(唐峙)의 교군(轎軍)과 야망군(夜望軍) 12명을 전하여 보내는 일과 각 고을 장교들을 공궤(供饋)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말하였다. 이로 인해 송정동과 용정동의 호수가 지흥동(智興洞)보다 더 많지만 지흥동에는 이러한 역(役)이 없기 때문에 각 항의 연역(烟役)은 반으로 나누었고, 환상(還上)은 송정동과 용정동이 조금 적으며, 황장(黃腸)은 각각 1립(立)씩 담당하였다. 그런데 지흥동에서는 송정동과 용정동이 번거롭고 무거운 별도의 역을 수행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호수(戶數)의 많고 적음으로 관에 정소하여 황장을 운반하는 군(軍) 8명을 송정동과 용정동에 더 배분하려고 하였다. 이에 홍병면과 김병탁 등은 삼척부사에게 등장을 올려서 황장군(黃腸君)은 관령(官令)에 따라 시행하고 송정동과 용정동만 담당하는 당치의 교군과 야망군의 전체(傳遞)와 장교의 공궤를 지흥동에 분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윤3월 16일에 삼척부사는 이전대로 시행하고 만일 전례가 없이 다시 침탈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별도로 엄히 처벌하며 이것으로 근거하여 상고한다는 처벌을 내렸다. 등장은 조선시대 백성들이 2인 이상이 연명(連名)하여 소송(訴訟)·청원(請願)·진정(陳情) 등을 위해 지방 수령에게 올리는 문서이다. 지방 수령은 등장의 내용을 확인한 후에 등장의 여백에 처분의 내용인 제음(題音)을 적어 내려 보냈다. 등장을 통해 마을 사이에 발생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 수령에게 등장을 올려 요청하는 과정과 이에 대해 지방 수령이 내린 처분을 확인할 수 있다.
* 황장(黃腸) : 나무의 심에 가까운 빛깔이 누르고 단단한 부분으로 조선시대 국왕의 관(棺)을 만들 때 품질이 좋은 소나무의 황장으로 만들었다.
제목 없음
道下面松亭龍井洞居大小民人等
右謹言 百里之地 莫非治下之地 一邑之民 莫非治下之民也 以一視之澤 各項徭役 斟酌損益 俾無偏苦之歎 故無論某處支站與沿路等洞 或有
輕減之役者 以其有他洞所無之役也 矣兩洞處在海濱官 山下沿路之致 至貧無依之民 只以魚鹽資生者居半 而有魚鹽之稅 官材輸運之
役 與他洞倍蓰 而大小賓行次時 唐峙轎軍獨擔 而傳遞夜望軍十二名 自洞中還上與戶布 各項烟役除給而使之是矣 人皆厭避者 雖風雪
暮夜 憂患疾苦 莫敢逃避之故也 各邑將校輩供饋段 計一年 四五百床 及路需與酒費等節 智興洞所無之役 故自古矣洞戶數 雖少加
於智興洞 各項烟役 彼此分半 而還上則矣洞稍少是遣 黃腸則各一立式擔當矣 自洞還以後 矣洞之還 反加於智興洞 而智興今以好訟之習 批隣
之心 不顧矣洞別役之煩重 只以戶數多少 起鬧呈官 黃腸軍八名 加排於矣洞 哀此矣洞 以莫非之洞 莫非之民 有此偏苦之役 故玆敢齊籲 細細
參商敎是後 黃腸軍則依官令施行 而右項矣洞偏當 唐峙轎軍 傳遞夜望軍 將校供饋等四件事 分排於智興洞 俾無苦歇不均之地
千萬望良爲只爲
行下向敎是事
城主 處分
己卯閏三月 日
松亭 洪秉勉 金秉翼 洪秉績 崔俊祥 洪秉楠 朴周極 金源益 權鳳圭 金秉謨
崔宅祥 金春碩 羅佑萬 鄭億基 金顯晩 龍井 金秉倬 金秉佑 沈來碩 等
[題音]
依前施行是遣
如有無例更侵者
當別般嚴處矣
以此憑考向事
十六日
行使[着押]
[三陟府使之印] 3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