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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05_01_A00163_001
- ㆍ입수처
- 천보당 최대선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치부기록류-사성록(四星錄)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7년 최준영 평생 사성록 / 崔遵泳 四星錄
- ㆍ발급자
-
정재교(鄭在敎)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최준영(崔遵泳)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907년 1월 2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未年陰正月二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2크기 22.5 × 22.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907년 정재교가 발급한 정미생 정준영(崔遵泳)의 사주논평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건은 정미년(丁未年) 음력 정월 이십구일에 작성된 것으로, 대상자는 최준영(崔遵泳)이며, 신석(申石)과 정재교(鄭在敎)가 사주를 논평한 내용이다. 본문은 계미생(癸未生)인 최준영의 평생 운세에 대한 총론과 세부 해석을 담고 있다. 해석에 따르면, 그는 세상에 나아가더라도 진퇴(進退)의 뜻이 의심받기 쉽고,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고 불이 꺼져 사라지듯 말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올 상이라 하였다. 세상의 일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게 되며, 청산(靑山)의 소머리처럼[牛頭] 사람들의 뜻이 미혹될 수 있다고 풀이하였다. 만사에 있어 고요하면 길하고, 움직이면 흉하며, 해미(亥未)년에는 반드시 큰 재해가 있을 것이라 예측하였다. 또한 이 사주는 ‘선곤후달(先困後達)’이라 하여 초년에 어려움을 겪으나 뒤에 성공하는 형국이라고 하였으며, 좋은 말은 이익을 주고, 나쁜 말은 믿지 않는 성향을 가졌다고 평하였다. 거처를 여덟아홉 번 옮길 가능성이 있고, 음손(陰孫)이 많으며, 아들은 적고 딸이 많을 운이라 하였다. 조업(祖業)은 잇기 어렵고, 직업은 무관(武官)의 임무를 맡아 내외 양방면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혼인 운에서는 처와 첩 각각 한 명씩 두는 형국을 피하기 어렵다고 하였고, 자년(子年)의 문운에서는 반드시 문권(文券)을 잡게 되나, 해년(亥年)의 문운은 별다른 이익이 없다고 풀이하였다. 끝으로, 유년(流年) 운세를 뒤에 쫓아가 보았으며, 이 모든 평은 신양산인(申陽山人)과 정수(鄭叟)가 한 것으로 기록을 마쳤다.
이 문건은 특정 인물의 출생 연월일시를 바탕으로 한 전통 사주 해석의 실제 사례로, 조선 후기·대한제국기 개인 운명관, 직업·혼인·가족 구성에 대한 예측, 그리고 운세 서술 어법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제목 없음
丁未年陰正月二十九日
崔遵泳四柱
申石 鄭在敎 論評
癸未生平生總論 崔遵泳
丈夫出世 進退志疑 木落歸根 火滅入墓
眼前物物 蠱惑衆心 靑山牛頭 衆志惟
惑 如干萬事 靜吉動凶 亥未之年 必
有大害 此人四柱 先困後達 以上先賢所贊
好言得利 惡言不信 基地發邊 移舍八
九 陰孫有衆 小男多女 卦逢六冲 祖業
難傳 職業如何 武官之任 內外兩才
一妻一妾 無可奈何 子年之文 必執
文券 亥年之文 別無利益
流年追後 以上 申陽山人
鄭叟 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