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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03_01_B00058_001
- ㆍ입수처
- 김회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총집류(總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송파서 / 松坡書
- ㆍ표제
- /
- ㆍ내제
- /
- ㆍ권수제
- /
- ㆍ판심제
- /
- ㆍ저자
- ㆍ간행정보
- 간사지: 간사자: 간사년: 서기년: 왕력: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탁본/서첩 권수: 책수: 질: 전: 장_매: 절_면: 책차: 권차: 점수: 1 크기: 31.5 × 18 접은크기: × 장정: 계선: 판구: 어미: 광곽: 반곽크기: × 단수: 행자수: 주쌍행: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
서명사항:서:발:정의: 주기사항: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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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관련기록:인장종수:장정:
- ㆍ요약주기
-
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지금 보이는 두 개의 필첩 중 하나는 표지에 ‘송파서(松坡書)’라고 제자(題字)한 초서첩(草書帖)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송파서(松坡書)’라고 제첨(題簽)한 해서첩(楷書帖)이다. 두 필첩은 모두 결락이 심한 낙장본이다. 초서첩은 뒷부분의 결락이 많고, 해서첩은 앞부분의 결락이 많은 듯하다.
두 필첩은 모두 서예 교습의 체본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어느 명필의 글씨를 목판에 음각(陰刻)으로 모각(模刻)하여 인출한 목판본(木版本)으로 보인다. 간기(刊記)나 서발문 등이 없으므로, 당초에 그 글씨를 쓴 명필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언제 어디에서 그것을 판각하여 간행하였는지 등은 모두 미상이다. 다만 해서첩의 맨 마지막 장 끝에 “자앙위송파서(子昻爲松坡書)”라는 주기(註記)가 있는데, 이는 “자앙(子昻)이 송파(松坡)를 위하여 썼다.”라는 말이다. ‘자앙(子昻)’은 송설체(松雪體)로 유명한 원나라의 명필 조맹부(趙孟頫)를 지칭함이 아닌가 한다. 조맹부의 자(字)가 자앙이다. 그렇다면 해서첩의 원래 글씨는 조맹부가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송파(松坡)는 어떤 사람의 아호인지,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미상이다. 위의 주기만 놓고 본다면 이 필첩의 당초 소장자는 송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음각하여 판본으로 간행해 낸 뒤에 이 간행본을 소장한 사람은 역시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여기에서 두 필첩 각각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송파서(松坡書)』 초서첩(草書帖)
먼저 표지(Image00001.jpg)에 ‘송파서(松坡書)’라고 제자(題字)한 서첩은 초서첩(草書帖)이다. 이 서첩 속에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회소(懷素)에게 지어준 「초서가행(草書歌行)」 구절의 일부, 즉 전체 26구 중 앞부분 10구 정도가 들어 있다. 회소(懷素)는 당나라의 승려로 초서를 잘 썼는데, 이백은 그의 초서 솜씨를 읊은 위의 「초서가행」을 지어서 그에게 주었다.
이 「초서가행」에 해당하는 사진은 ‘Image00002.jpg’에서 ‘Image00006.jpg’까지의 5컷이나, 실제로는 ‘Image00003.jpg’ 이후의 4컷이다. 곧 이 가운데 첫 번째의 ‘Image00002.jpg’는 ‘Image00004.jpg’와 중복되는 것으로서, 이 가행(歌行)이 ‘Image00003.jpg’에서부터 시작되므로 불필요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Image00003.jpg’ a면 말미의 ‘稱(칭)’자와 b면 첫 글자인 ‘步(보)’자 사이에는 ‘獨(독)’자가 빠졌다. ‘Image00003.jpg’의 a면과 b면 우(右)·좌(左) 양단에는 각각 ‘一’·‘二’라는 쪽 번호가 매겨져 있을 터이지만, 사진 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Image00004.jpg’ 이하 ‘Image00006.jpg’까지의 사진에는 각각 우(右)·좌(左) 양단에 쪽 번호가 ‘三’에서 ‘八’까지 온전히 매겨져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다.
2. 『송파서(松坡書)』 해서첩(楷書帖)
다음으로, 표지(Image00007.jpg)에 첨지를 붙여서 ‘송파서(松坡書)’라고 제첨(題簽)한 서첩은 해서첩(楷書帖)이다. 이 해서첩의 내용에 해당하는 사진은 ‘Image00008.jpg’에서 ‘Image00011.jpg’까지의 4컷이다. 이 속에는 ① 한나라의 상산사호(商山四皓)가 지었다는 「자지가(紫芝歌)」의 일부, ②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집시(蘭亭集詩)」, ③ 후한 때의 명상(名相) 원안(袁安)이 미천했을 때 대설이 내린 중에 집 안에서 점잖게 누워있었다는 ‘원안와설(袁安臥雪)’-일명 ‘원안고와(袁安高臥)’-의 고사가 각각 들어 있다.
①에 해당하는 사진은 ‘Image00008.jpg’ a면의 반 컷이고, ②에 해당하는 사진은 ‘Image00008.jpg’ b면과 ‘Image00009.jpg’의 1.5컷이며, ③에 해당하는 사진은 ‘Image000011.jpg’과 ‘Image000011.jpg’의 2컷이다.
①은 전체가 10구인데, 이 중 마지막 2구 남짓만이 실려 있고, 그 앞부분은 결락되었다. ②는 “仰視碧天際 俯瞰淥水濱”으로 시작되는 시인데, 이 서첩 상에는 맨 앞의 ‘仰視’ 두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 까닭은 장첩 과정에서 그 글자가 결락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면이 닳아서 만환(漫漶)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만약 만환된 것이라면 ‘仰’ ‘視’ 두 글자는 각각 ‘Image00008.jpg’ a면의 말단과 b면의 벽두에 위치한다. ③의 ‘원안와설(袁安臥雪)’의 고사는 문장이 간결한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고금사문류취(古今事文類聚)』-『古今事文類聚』 前集 卷四-에서 따다 실은 글이 아닌가 짐작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맨 마지막 줄의 ‘餓’자 다음에 ‘死’자가 빠졌다. 해서첩의 마지막 면 좌단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자앙위송파서(子昻爲松坡書)”라는 주기(註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