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기본정보
- ㆍ자료ID
- B003_01_A00092_001
- ㆍ입수처
- 김회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치부기록류-택기(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미상인 장택기 / 葬擇記
- ㆍ발급자
-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7 × 20.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자년(추정)에 여성 망자 모인 2인 면례(緬禮)의 장지(葬地) 및 장일(葬日) 등을 선택하는 내용으로 작성‧발급된 장택기(葬擇記, 葬事擇日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처음, 택지(擇地)의 형국(形局)과 좌‧향(坐向) 및 혈(穴)자리에 흐르는 물의 방향을 기록한 것으로 “경태방에서 나온 용맥이 건해방으로 이어지는 형국, 간방을 등지고 곤방을 바라보는 자리[庚兌龍乾亥 艮坐坤向]”, “혈자리의 물은 경방에서 들어 병오방으로 빠져나감[庚得 丙午破]”이라고 기록하였다. 다음은 망자 및 주사자(主事者, 主喪者)에 관한 기록으로, ‘선명(仙命)’은 망자[仙]의 생년을 의미하고 ‘건(乾)’은 남성, ‘곤(坤)’은 여성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망자는 “여성 망자 을사생[坤仙命 乙巳生]”, “여성 망자 경자생[坤仙命 庚子生]”으로 2인이다. 주사자는 손자(孫子)와 증손(曾孫) 2인으로 생년을 각각 무인생, 갑진생으로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이 면례의 주사자는 망자의 손자 아무개이고, 이들 2대가 선조 가운데 조비(祖妣)에 해당하는 분묘 2기를 이장하려는 상황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문서에는 사과(四課)의 기록이 없다. 사과는 망자의 사주(四柱)에 대한 장사 일시의 사주 격인 ‘조명(造命)’을 의미하는데, 연월일시의 간지와 함께 오행 등을 병기하기도 한다. 장택기에는 별도로 망자의 사망연월일이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조명사과의 연간지를 통해 망자의 사망 또는 이장 연도 및 해당 장택기의 발급연도를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이 누락되어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다. 결락된 좌측 일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장사(葬事) 연운(年運)을 따질 때 보는 홍운(洪運, 洪)과 정운(正運, 正)을 기록하였는데, 홍운은 홍범오행(洪範五行)으로, 정운은 월건법(月建法)으로 산운(山運)을 점쳐 얻어낸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홍운과 정운 모두 ‘무진 목(戊辰木) 운’으로 뒤에 “운은 ‘무토’가 사령하였다.[運戊土司令]”라고 현주(懸註)하였다.
다음으로는 면례의 절차를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다. 후토사(后土祀, 광을 파기 전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 일시로 “장삿날에 선행함[葬日先行]”이라고 하였고, 파구묘(破舊墓, 이장 전 원래 있던 묫자리를 파묘하는 일) 일시와 방향은 “장삿날 이른 아침 먼저 동방에서 파묘하기 시작함[葬日早朝 先破東方]”, 안장(安葬)일은 “3월 1일 을축”, 하현택(下玄宅, 下棺) 일시는 “오시(午時)와 신시(申時)”이다. 그리고 제주가 기복(忌伏, 엎드리지 말아야 하는 곳)해야 할 방향은 “사방(巳方)‧오방(午方)‧미방(未方)”, 취토(取土, 吉方의 흙을 떠서 壙中의 네 모서리에 넣는 의식)와 회장(灰場)의 길방은 “동방(東方)”이다.
호충은 ‘적호(的呼)살’과 ‘정충(正冲)살’을 합한 말로, 적호는 이른바 망자가 불러서 저승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살, 정충은 일진(日辰)과 생년(生年)의 천간(天干)은 같지만 지지(地支)가 서로 충(冲)에 해당하는 흉살을 가리키는데, 생년이 이 호충살에 해당되는 사람은 계빈이나 하관 등의 의식에 자리를 피한다. ‘기복[不伏]’과 함께 금기를 나타낸다. 여기에는 “위와 같음[上仝]”이라고만 되어 있어 호충살에 해당하는 생년을 알 수 없다. 좌측 결락 부분에 생년이 기록된 어느 항목이 있었거나 또는 번 문서와 연계하여 “신미생, 계미생, 을미생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문중 고문서에서 종종 발견되는 장택기는 조선후기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과 더불어 민중에서 성행한 유교식 상장례 절차에 풍수지리가 적용된 형태의 풍습이 나타난 유형적 증거로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일괄문서가 아닌 낱장의 문서 자체만으로는 망자나 주상자의 인명을 파악하기 힘들고, 이에 따라 발급 시기를 비정하는데 한계가 있다. 소장 문중과 소속 인물의 관계망 또는 내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족보자료 및 기타 문집‧제문‧간찰 등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 문서는 번 문서와 비교 해 볼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문서 작성 형식이나 내용상 ‘면례시 장택기’라는 점이 비슷하거나 같고, 안장일이 같으며, 특히 주사자 2인의 생년 역시 같으면서 ‘손->증손’, ‘증손->고손’으로 바뀌어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두 문서는 동일한 주사자가 조비 분묘 2기 및 증조고 분묘 1기와 증조비 분묘 2기를 같은 날에 이장할 때 각각 작성‧발급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뒤 문서와 달리 이 문서에는 ‘사과’와 ‘방화(放火, 放燈)’가 누락되었는데, 두 문서가 같은 날 안장하는 것으로 보면 정황상 뒤 문서의 ‘사과’ 기록과 동일한 연간지로 추정되므로, 이 문서의 발급연도를 ‘갑자년’으로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하현택의 시간으로 따져보면 뒤 문서가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 이 문서가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신시(申時, 오후 3시-5시)이므로 순서상 증조고 분묘의 이장을 마친 뒤 바로 조고 분묘의 이장을 진행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이 문서는 주로 낮 시간에 장사를 진행하는 내용이므로 방화 기록이 없을 수 있다.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고문서입문2』, 민속원, 2021 김향숙, 「공주(公州) 초려가(草廬家) 소장 장택기(葬擇記) 사례 연구」, 『고문서연구』60(한국고문서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庚兌龍乾亥 艮坐坤向 庚得丙午破
坤仙命 乙巳生
坤仙命 庚子生
主事孫 戊寅生
曾孫 甲辰生
洪‧正 戊辰木 【運戊土司令】
后土祀 葬日先行
破舊墓 葬日早朝先破東方
安葬 三月初一日乙丑
下玄宅 午時‧申時
忌伏 巳‧午‧未方
取土‧灰場 東方
■…■[四課 등 결락]
呼冲 上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