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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03_01_A00046_001
- ㆍ입수처
- 김회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증빙류-시권(試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미상인 부 '향당화성인' 시권 / 賦 ‘鄕黨畫聖人’ 試券
- ㆍ발급자
-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8.4 × 19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인이 미상시기 미상의 문과에서 작성한 부(賦) 시권(試券)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미상인이 미상시기 미상의 문과에서 작성한 부(賦) 시권(試券)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겨우 고시과목이 ‘부’라는 점, 그 시제(試題)가 ‘향당화성인(鄕黨畫聖人)’이라는 점, 그리고 시권의 자호(字號)가 ‘칠천(七天)’이라는 점뿐이며,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느 단계의 과거시험에서 이 시권을 작성하여 어떤 성적〔과차·등제〕을 거두었는지는 모두 미상이다. 이러한 정보(情報)의 불상(不詳)은 무엇보다 이 시권의 비봉(秘封)이 탈락된 데 기인한다.비봉이 없으므로, 응시자 본인은 물론 응시자의 사조(四祖)에 대한 신원도 알 수 없다.
이 시권은 이른바 본초(本草)로, 응시자가 써낸 원본 시권이다. 이는 수정 한 글자에 일일이 검인을 받았다는 점과 시권 말미에 주묵(朱墨)으로 쓴 ‘사동(査同)’이라는 글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원본 시권 말미에 ‘지동(枝同)’이라는 글자를 쓰고 사본 시권 말미에 ‘사동(査同)’이라는 글자를 쓰지만, 이 시권과 같이 그 반대로 쓴 경우도 종종 보인다. 시권 첫머리의 시제(試題) ‘향당화성인부(鄕黨畫聖人賦)’ 바로 위에 쓴 ‘東(동)’자는 아마도 이 시험의 응시자가 시권을 되돌려 받은 뒤에 “자신이 응시했던 과거시험의 종류가 ‘동당시(東堂試)’였다.”라는 뜻으로 추기(追記)한 메모[註記]일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 때 ‘동당시’라는 말은 곧 ‘대과’라는 말과 함께 ‘문과’의 별칭으로 쓰였던 말이다. 따라서 바로 이 ‘東(동)’자로 인해 본 시권이 문과에서 작성된 문과 시권이라는 점을 추지(推知)할 수 있다. 다만 그 문과 시험의 단계는 알 수 없다. 만약 시권을 제출하기 전에 시권상에 이러한 ‘東(동)’자를 써놓는다면, 시관들로부터 이상한 낙서 또는 암호를 표시하였다는 의심을 사서, 대번에 낙과(落科)를 당할 것이다.
고시과목은 ‘부(賦)’이다. 이 부는 과장에서 지은 것이므로, 통상 이를 과부(科賦)라 이른다. 조선시대의 ‘과부’는 과거의 제술시험 과목 중 문학을 시험하기 위해 부과한 부(賦) 형식의 문체로, 대체로 압운(押韻)‧대우(對偶)‧평측(平仄)의 격식에서 자유로운 고부(古賦)에 속한다. 시제(試題)는 ‘향당화성인(鄕黨畫聖人)’이다. 이 말은 ‘『논어』의 「향당(鄕黨)」편에서 성인(聖人)인 공자(孔子)를 그림처럼 잘 묘사하였다.[(鄕黨)畫出一箇聖人]’라는 뜻인데, 이는 대개 정자(程子) 등의 선현(先賢)들이 일찍부터 해온 말이다. 『논어』 「향당」편에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공자의 언사와 거동, 용색(容色)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부는 압운(押韻)을 하지 않으면서 1구(句)를 6언(言)으로 만들되 제4자에 허사(虛辭)를 사용한, 조선 후기의 전형적 형식의 과부(科賦)이다. 이 형식의 과부는 대개 30련으로 구성되었는데, 미상인의 이 과부도 30련의 길이로 작성되었다.
자호(字號) ‘칠천(七天)’은 이 시권이 일곱 번째로 제출되었음을 뜻한다. 과차(科次; 성적의 등급)와 등제(等第; 합격 석차)는 모두 미상이다. 과차와 등제는 대개 이 시권을 역서(易書)한 사본 시권[朱草]에 매겨져 있을 터여서, 사본 시권이나 기타의 관련 문헌이 발견되지 않는 한 지금 확인해볼 수가 없다.
국역
01.緇帷闢而講磨, 강학하는 자리1)를 열고 학문을 갈고 닦았으니,
諄誨切而無隱. 부지런한 가르침은 절실했고 숨김이 없으셨네.
02.紛承喩而善言, 분주히 가르침 받들고 말을 잘 하였으니,
聊詳記而著論. 우선 상세히 기억하였다가 『논어』에 드러냈네.
03.得一說於篇上, 일단의 말씀을 「향당(鄕黨)」편에서 얻어들었으니,
仰先喆之格言. 선철의 격언을 우러러 사모하네.
04.旣德行之善形, 이미 그 덕행을 잘 묘사하였으니,
認聖人之猶摸. 성인의 모습을 아직도 그려볼 수 있네.
05.尼岑高以日月, 이구산(尼丘山)2)은 일월과 함께 높은데,
道如天而難畫. 도는 하늘과 같아서 그림으로 묘사하기 어렵네.
06.承善喩於博約, 박문약례(博文約禮)3)에 대해 잘 깨우쳐주신 말씀 받들었으니,
仰怳惚於前後. 우러러봄에 황홀하여 앞에 계시는 듯하고 뒤에 계시는 듯하였네.4)
07.繽趨進而問答, 분분히 나아가 질문하고 대답했으니,
果言聖於何地. 과연 성인을 어떤 경지에서 말했던가.
08.屬魯語之著書, 『노론(魯論)』5)의 저술을 부탁했으니,
十七節以詳記. 「향당(鄕黨)」의 17개 절(節)을 지어서 상세히 기록했네.
09.明禮義於事上, 윗사람을 섬김에는 예의를 밝혔고,
備信實於居鄕. 향리에서 지냄에는 신실함을 갖추었는데,
10.而謹言與揖遜, 말을 삼가는 일과 읍양(揖讓)하는 일,
曁問藥又交朋. 그리고 약물(藥物)6)을 물은 일, 친구를 사귄 일이 다 들어 있네.
11.申夭際而畢記, 한가히 지내실 때의 느긋하고 화열(和悅)한 모습7)도 다 적었으니,
動靜間而備詳. 움직임의 모습과 고요함의 모습을 상세히 다 갖추었네.
12.輸中和之大道, 중화(中和)의 대도(大道)를 말하였으되,
無不載於篇中. 「향당」편 속에 싣지 않음이 없었네.
13.辭氣昭於字字, 말씨는 글자마다 분명하고
容色備於行行. 모습은 행간마다 다 묘사되었네.
14.援玆書而味觀, 이 책을 끌어당겨 음미하며 살펴보니,
要識得乎氣像. 요컨대 그 기상을 알 수 있구나.
15.伊一篇之備錄, 이 한 편에서 갖추 기록한 바가
何若是其不差. 어쩌면 이다지도 정확한가.
16.如吾聖之在目, 마치 우리의 성인 공부자(孔夫子)께서 눈앞에 계시는 듯하니,
謂之畫也亦宜. 그 글을 그림이라 일컬어도 또한 마땅하구나.
17.肆程氏之揭說, 이에 정자(程子)가 해설을 달기를
一箇聖爲摸寫. ‘「향당」편은 분명히 한 분의 성인을 그려낸 것’이라 했지.8)
18.豈以書而觀書, 어찌 이를 책이라 여기면서 이 책을 볼 것인가,
認非畫而猶畫. 그림이 아니면서도 역시 그림임을 알겠네.
19.寔嗜學之攸致, 이는 실로 배우기를 좋아한 소치이니,
非善觀而奚爲. 잘 관찰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리 하였겠는가.
20.不徒尙乎理會, 의미의 이해를 숭상할 뿐만이 아니라,
可反覆而潛究. 반복하여 마음을 가라앉힌 채 연구함이 옳겠네.
21.非門徒之謹書, 문하생들이 성실히 기록하지 않았다면,
豈畫出之如是. 어찌 이와 같이 그림으로 그려내었겠는가.
22.尙興起於千載, 천 년이 지난 뒤에도 오히려 감동·분발하게 되니,
矧親炙於當時. 하물며 그 당시에 직접 훈도를 받은 경우임에랴.
23.丌魯論而上下, 이 『노론(魯論)』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에서
遡尼父之聖德. 공부자의 성덕(聖德)을 거슬러 찾아볼 수 있구나.
24.高杏壇而語默, 행단(杏亶)에 높이 앉아 말씀하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했으니,
道彌堅而彌篤. 도는 더욱 견고하고 실천은 더욱 돈독했지.
25.而一動與一靜, 한 번 움직임과 한 번 고요함은
信難形而難容. 참으로 형용하기 어렵고 묘사하기 어렵지.
26.得觀感於弟子, 제자들에게서 살펴보고 감화 받을 수 있으니,
儘審視而記詳. 참으로 자세히 관찰하고 상세히 기록하였네.
27.昭衣制於當暑, 깨끗한 의복은 더운 날씨를 당해서 만들었고,
𥇕食度於不撤. 깨끗한 음식은 그만두지 않음을 표준삼았네.
28.而盡言其氣像, 그리하여 그 기상(氣像)을 다 말했으니,
不亦可乎摸出. 묘사하여 그려냄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29.寔先民之著說, 이는 옛 현인의 분명한 설명이니,
畫一聖爲分明. 한 분의 성인을 그려내었음이 분명하구나.
30.抽余毫而綴辭, 나의 붓을 뽑아들고 이 글을 지음에
慕至道而起仰. 지극한 도를 경모하여 우러러보는 마음을 일으키네.
1) 강학하는 자리 : 원문 ‘緇帷(치유)’를 번역한 말이다. 이는 원래 ‘그늘이 짙은 숲속’을 ‘검은 휘장 속의 강단’이라 비유한 데서 유래되었다.〔『莊子』 「漁父」, “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2) 이구산(尼丘山) :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산 이름이다. 이산(尼山)·이구(尼丘)라고도 이르는데,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가 이 산에 기도하여 공자를 낳았다 한다.
3) 박문약례(博文約禮) : ‘학문으로써 지식을 넓히고 예절로써 행실을 절제한다.’는 뜻으로, 줄여서 ‘박약(博約)’이라 이르며, 『논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논어』 「옹야(雍也)」에서 (공자께서) “군자가 학문으로써 지식을 넓히고 예절로써 절제하면 또한 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라 하였고, 「자한(子罕)」에서 (안연이)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인도하시되, 나에게 학문으로써 지식을 넓게 해주시고 나에게 예절로써 절제하게 해주신다.”라 하였다.〔『論語』 「雍也」,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論語』 「子罕」,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4) 우러러봄에 …… 듯하였네 : 『논어』 「자한(子罕)」에서 공자의 덕에 대해 제자 안연(顔淵)이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파고들수록 더욱 견고하며, 쳐다보면 눈앞에 계시다가 홀연히 등 뒤에 계시기도 하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라고 찬탄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주자가 “앞에 계시다가 홀연히 뒤에 계신다고 함은 황홀해서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在前在後, 恍惚不可爲象.]”라고 해설하였다.〔『論語』 「子罕」, “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髙, 鑚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朱子注> 在前在後, 恍惚不可爲象.”〕
5) 『노론(魯論)』 : 노(魯)나라 사람이 전해준 『논어』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판본이다. 『노론어(魯論語)』라고도 이른다.
6) 약물(藥物) : 강자(康子)가 공자에게 약물(藥物)을 하사한 적이 있었다.〔『論語』 「鄕黨」, “康子饋藥.”〕
7) 느긋하고 화열(和悅)한 모습 : 『논어』에서 ‘공자가 한가하게 지낼 적에 그 모습이 느긋이 펴진 듯하고 그 얼굴빛이 온화하고 즐거운 듯하였다.’라고 묘사하였다.〔『論語』 「述而」,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8) 정자(程子)가 …… 그려낸 것이라 했지 : 『논어』 「향당(鄕黨)」 서설(序說)의 주자(朱子) 주석에 보이는 말이다.〔『論語』 「鄕黨」, “程子曰, 鄉黨, 分明畫出一箇聖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