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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이는 미상인이 미상시기 미상과거에서 작성한 ‘궐민석’부(‘厥民析’賦) 시권(試券)의 사본[朱草] 시권이다. 이 시권은 누가 언제 무슨 과거시험에서 작성한 시권인지 모두 미상이고, 알 수 있는 것은 겨우 고시과목이 과부(科賦)라는 점, 그 시제가 ‘궐민석(厥民析)’이라는 『서경』의 구절이라는 점 뿐이다.
사본시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본시권을 역서(易書)한다. ‘역서’란 시관들이 채점을 할 때 응시자의 필적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원본을 베껴 써서 채점용의 ‘사본 시권[朱草]’을 만듦을 이른다. 일반적으로는 원본시권인 본초의 말미에 ‘지동(枝同)’이라는 글자를 쓰고 주초의 말미에 ‘사동(査同)’이라는 글자를 쓰지만, 이 사본시권에는 지동이라는 표현이 적기되어 있다. 사본 시권이므로 채점 평가에 해당하는 과차(科次)의 기재가 있다.
이 사본시권에는 채점 시에 표시한 비말(批抹; 글귀 옆에 세로로 그은 붉은 선. 폄하 및 감점을 의미함.)과 ‘차하(次下)’라는 과차가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 이 사본시권의 원본시권은 가로형 시지(試紙)를 사용하였다. 이 시권은 세로형 시지를 사용했는데, 과시, 과부, 또는 과표(科表)·과전(科箋)을 적을 때 작품을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본시권이므로 당연히 비봉에 있어야 할 응시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적기되어 있지 않다. 원본시권에도 비봉이 붙어 있지 않다. 김회준 가에서 들어온 비봉이 수건 있는데, 추후 확인과정을 통해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호(字號)는 ‘원본 시권’의 경우 우측 하단에 극히 일부분의 글자 획만이 보일 뿐이지만, 이 사본시권의 경우 ‘이현(二玄)’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적혀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자호 ‘이현(二玄)’은 곧 당해 시권이 22번째로 제출되었음을 뜻한다. 이 과부를 작성한 과거시험이 진사시인지 문과인지도 미상인데, 이는 조선시대에 부(賦)를 진사시와 문과 두 과거시험에서 모두 고시과목으로 채택·부과하였기 때문이다. 그 과거시험의 단계도 초시인지 복시인지 미상이다.
고시과목은 ‘부(賦)’이다. 이 부는 과장에서 지은 것이므로 통상 이를 과부(科賦)라 이른다. 조선시대의 ‘과부’는 과거의 제술시험 과목 중 문학을 시험하기 위해 부과한 부(賦) 형식의 문체로, 대개 압운(押韻)‧대우(對偶)‧평측(平仄)의 격식에서 자유로운 고부(古賦)에 속한다. 시제(試題)는 ‘궐민석(厥民析)’인데, 이는 『서경』 「요전(堯典)」에 나오는 구절이다. 거기에 “낮의 길이는 여름과 겨울의 중간이고 중성(中星)은 조성(鳥星)이니, 이로써 한가운데의 봄 곧 춘분(春分)의 시점을 정확하게 정한다. 이 때 백성들은 전야(田野)에 흩어져서 일하고 조수들은 새끼를 친다.[日中, 星鳥, 以殷仲春, 厥民析, 鳥獸孶尾.]”라는 말이 보인다.이 부는 압운(押韻)을 하지 않으면서 1구(句)를 6언(言)으로 만들되 제4자에 허사(虛辭)를 사용한, 조선 후기의 전형적 형식의 과부(科賦)이다. 이 형식의 과부는 대개 30련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미상인의 과부도 30련의 길이로 작성되었다.
과차는 상기한 바와 같이 ‘차하(次下)’인데, 이는 15개의 과차 등급 즉 ‘상상·상중·상하, 중상·중중·중하, 하상·하중·하하, 차상·차중·차하·갱(更)·외(外)·위(違)’ 중 열두 번째의 등급에 해당한다. 등제(等第)는 표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미상이다.
원문 / 국역
‘厥民析’賦
靈雨零而𩿇鳴,
春事急於東甸.
紛擧耟而擧趾,
聿徂隰而徂畛.
民熙皥而載析,
卬有喜於克敏.
節旣屆於農務,
衆故散於遍原.
農已畢則上入,
民不析而處隩.
循天時而備事,
占星候而順度.
歌耕鑿於食力,
咏衢月而瞿瞿.
天機斡而運序,
日載陽而星鳥.
禽催種而下桑,
草抽句而宜菑.
紛農人之告春,
云有事於西疇.
耕豈緩於耦千,
時可急於播百.
携鎡器而乃理,
問新畬於東陸.
中五畝而宅野,
偕婦子而勤服.
繽或東而或西,
聿于原而于隰.
無少長而共力,
幷彊以而趨事.
回三冬之處內,
換一春之遍野.
囿羣生於太和,
樂時務於治畦.
廬中田而霧散,
耕百畝而雲布.
自邑居而于野,
與春氣而同處.
農旣急於急務,
不亦宜乎厥析.
氓於是而散居,
聿于于而勤服.
寔出野而同人,
所共井而力穡.
昔入室而務閑,
今在野而服田.
隨時序而出入,
識緩急而元元.
非三事之所重,
詎布散之能然.
丌壁經而上下,
遡分命於放勳.
象日月而授時,
秩東作而順序.
肆羣庶之重農,
驗節侯而分處.
遵寒暑而聚散,
春於野而冬隩.
澤尙流於千載,
逮吾東而民皥.
01.靈雨零而𩿇2)鳴, 좋은 비가 내리고 뻐꾸기가 울면
春事急於東甸. 동쪽 들판에서는 봄철의 밭갈이가 급하지.
02.紛擧耟而擧趾, 분주히 쟁기를 들고 발꿈치를 드니,3)
聿徂隰而徂畛. 낮은 밭에도 달려가고 높은 밭에도 달려가네.
03.民熙皥而載析, 백성들은 즐겁게 흩어져 지내는데,
卬有喜於克敏. 나는 민첩함에서 기쁨을 가지네.
04.節旣屆於農務, 절후가 이미 농사에 힘쓸 때에 이르렀으니,
衆故散於遍原. 대중들은 참으로 온 들판에 흩어졌네.
05.農已畢則上入, 농사일이 끝나면 위쪽으로 들어가니,
民不析而處隩. 백성들은 흩어지지 않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지내지.
06.循天時而備事, 자연의 시절에 따라 일에 대비하니,
占星候而順度. 성상과 기후를 점쳐서 도수에 순응하네.
07.歌耕鑿於食力, 노력한 데서 먹고 마심을 노래하니,
咏衢月而瞿瞿. 성세(盛世)를 찬송하면서도 조심을 하지.
08.天機斡而運序, 천체가 돌아 계절이 바뀌니,
日載陽而星鳥. 날씨는 따뜻해지고 중성(中星)은 조성(鳥星)4)이지.
09.禽催種而下桑, 새[뻐꾸기]가 파종하기를 재촉하며 뽕나무에 내려앉을 때
草抽句而宜菑. 잡초가 싹터 나오니 김매기를 해야 하네.
10.紛農人之告春, 농부들은 농사일 알리느라 혼잡하니,
云有事於西疇. 서쪽의 전답5)에 일이 있다 하네.
11.耕豈緩於耦千, 밭갈이를 함에는 어찌 많은 사람의 우경(耦耕)6)을 늦추겠으며,
時可急於播百. 백곡을 심음에는 그 시기가 얼마나 다급할 텐가.
12.携鎡器而乃理, 농기구를 휴대하여 가다듬은 다음
問新畬於東陸. 신구(新舊)의 개간지를 동쪽 들판에서 물어보네.
13.中五畝而宅野, 5묘(畝)의 땅 한가운데에 터를 잡아 농막을 짓고
偕婦子而勤服. 아내 및 자식들과 함께 힘껏 농사일을 하네.
14.繽或東而或西, 동쪽에서도 분란스럽고 서쪽에서도 분란스러우니,
聿于原而于隰. 높은 들판에서도 일하고 낮은 들판에서도 일하네.
15.無少長而共力, 젊은이 늙은이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幷彊以而趨事. 힘센 사람들을 규합하여 일하러 나아가네.
16.回三冬之處內, 겨울철 석 달 동안 방안에서 지내다가
換一春之遍野. 봄 한 달은 온 들판에서 일하게 되었네.
17.囿羣生於太和, 뭇 생명체가 천지의 화기(和氣) 속에 들었으니,
樂時務於治畦. 농사일을 즐기면서 전답을 정비하네.
18.廬中田而霧散, 밭 한가운데에 농막을 치니 안개가 흩어지는데,
耕百畝而雲布. 백 묘의 밭을 가니 구름이 덮는구나.
19.自邑居而于野, 읍내에서 살다가 들판에서 지내니,
與春氣而同處. 봄의 양기와 함께 한 곳에서 지내게 되었네.
20.農旣急於急務, 급한 일 중에서도 농사일이 매우 급하니,
不亦宜乎厥析. 백성들이 흩어져 지냄도 또한 당연한 일이지.
21.氓於是而散居, 백성들이 이 때에 흩어져서 거주하는데,
聿于于而勤服. 모두 뜻을 얻어서 힘껏 일을 하는구나.
22.寔出野而同人, 실로 들판에 나와서 서로 간에 협력하고,
所共井而力穡. 우물을 함께 쓰면서 농사짓기에 힘쓰네.
23.昔入室而務閑, 지난날에는 방안에 들어가서 농사일이 한가했는데,
今在野而服田. 지금은 들판에 있으면서 농사일에 힘을 쓰네.
24.隨時序而出入, 철 따라 집 안팎을 들락거리면서
識緩急而元元. 늦출 일 급한 일을 식별하고 근본을 따져보네.
25.非三事之所重, 삼사(三事)7)가 중요하지 않다면
詎布散之能然. 어찌 이와 같이 흩어져 살 수 있겠는가.
26.丌壁經而上下, 공씨(孔氏)의 집 벽에서 나온 『서경』의 처음과 끝 전체에서
遡分命於放勳. 요(堯)임금으로부터 명을 나누어 받았음을 거슬러 알 수 있지.
27.象日月而授時, 해와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달력을 만들어 주니,8)
秩東作而順序. 차례를 따져 파종하면서 절서(節序)를 따랐네.
28.肆羣庶之重農, 이에 백성들은 농사를 중시하여
驗節侯而分處. 절후를 살펴보고 흩어져서 지냈지.
29.遵寒暑而聚散, 춥거나 더운 날씨에 따라 모이거나 흩어져 지내니,
春於野而冬隩. 봄에는 들판에서 지내고 겨울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지내네.
30.澤尙流於千載, 은택이 아직도 천년토록 끼쳐지고 있으니,
逮吾東而民皥. 우리나라에 이르러서도 백성들이 삶을 즐거워하네.
1) 궐민석(厥民析) : 시제(試題)로 쓰인 이 말은 『서경』 「요전(堯典)」에 나오는 문구로, “(봄이 되어 농사일을 하느라) 그 백성들이 흩어져서 지낸다.”는 뜻이다.
2) 𩿇 : 원문에는 ‘𩿇(호)’로 되어 있으나, 이는 문의로 볼 때 ‘鳲(시)’의 오기라고 판단된다. ‘𩿇(호)’는 ‘鳸(호)’로도 쓰는데, ‘절지(竊脂)’라고도 불리는 ‘상호(桑鳸·桑扈)’라는 새로, 본문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이다. ‘鳲(시)’는 곧 ‘시구(鳲鳩)’로 ‘뻐꾸기[布穀]’를 이르는데, 이를 ‘길국(鴶鵴)’·‘확곡(穫穀)’ 등으로도 이른다. 『금경』의 주석에 “이 새가 울 때 농사일이 막 시작된다.” 하였다.〔『禽經』, “鳲鳩, 戴勝·布穀也. <注> 此鳥鳴時, 耕事方作.”〕 또 『이아익』에서 “‘뻐꾸기[鳲鳩·布穀]’는 잘 울기 때문에 ‘명구(鳴鳩)’라 이른다.” 하였다.〔『爾雅翼』 권14, 「釋鳥·鳲鳩」“又名𪇖鷜·布榖, 好鳴之鳥, 故謂之鳴鳩.”〕
3) 발꿈치를 드니 : 이는 원문의 ‘거지(擧趾)’를 옮긴 말로, ‘밭갈이를 한다’는 뜻이다.
4) 조성(鳥星) : 남방의 주작칠수(朱雀七宿)로, 춘분날의 초저녁에 남중(南中)하는 중성(中星)이다. 원문 ‘星鳥(성조)’는 ‘중성(中星)은 조성(鳥星)이다.’라는 말로, 시제(試題) ‘厥民析(궐민석)’과 함께 『서경』 「요전(堯典)」에 보인다.〔『書經』 「堯典」, “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寅賔出日, 平秩東作. 日中, 星鳥, 以殷仲春. 厥民析, 鳥獸孶尾.”〕
5) 서쪽의 전답 : 원문 ‘西疇(서주)’를 옮긴 말이지만, ‘西疇(서주)’란 실은 ‘전답(田畓)’을 일반적으로 이르는 범칭어(汎稱語)이다.
6) 우경(耦耕) : 두 사람이 나란히 짝을 지어 밭갈이함을 이른다. 또한 ‘농사일에 힘쓴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7) 삼사(三事) : ‘삼농(三農)’과 같은 말로, 평지(平地)·고원(高原)·저습(低濕) 세 지대의 농사를 이른다.
8) 해와 달의 …… 만들어 주니 : 『서경』 「요전」에서 인용한 말이다. 거기에 “이에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명하여 하늘의 도수를 공경히 따르면서 일월성신의 운행법칙을 추산·관찰하고 역서(曆書)를 만들어 삼가 백성들에게 절후를 알려주게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書經』 「堯典」, “乃命羲和, 欽若昊天, 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