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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03_01_A00038_001
- ㆍ입수처
- 김회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증빙류-시권(試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3년 김헌룡 부 '제월광풍갱별전' 시권 / 金軒龍 賦 ‘霽月光風更別傳’ 試券
- ㆍ발급자
-
김헌룡(金軒龍)
원문내용:추정: 19세기 중반 출생(추후 족보 확인 후, 비정 요망)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76.3 × 175.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73년 강릉에 사는 39세의 경주김씨(慶州金氏) 김헌룡(金軒龍)의 향시 제월광풍갱별전 부(霽月光風更別傅 賦) 시권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비봉]
「김헌룡(金軒龍, 39세)의 1873년도 향시(鄕試) ‘제월광풍갱별전’부(‘霽月光風更別傳’賦) 시권(試券)」의 비봉(秘封)이다. 본원의 B003_01_A00089_001 경주김씨본원세계도에 따르면 김종영의 아들 중에는 김헌룡이 없다. 장자인 金漢龍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비봉’은 시권 우측 상단의 신원(身元) 기재란 부분을 이르는데, 이를 피봉(皮封)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 부분의 기재 사항은 본인의 관함·성명·나이·본관·거주지와 사조(四祖; 부·조·증조·외조)의 관함·성명 등이다. 응시자는 과거시험 시행일 이전의 일정한 기한 내에 스스로 시지(試紙)를 마련하고 그 피봉부(皮封部)에 소요 기재사항을 기재한 다음 그 시지를 들고 녹명소(錄名所)에 나아가 녹명(錄名; 응시자 성명 등록)을 한다. 그 때 관으로부터 신원 기재 사항을 확인 받은 뒤 피봉 부분을 호봉(糊封)하여 밀봉하고 관인을 답인 받는다. 채점 시에 시관들이 응시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도록 감추기 위해 미리 피봉 부분을 밀봉해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비봉’이라 이른다. 김헌룡의 비봉 기재 사항은 다음 같다.
본인 신원 : 유학(幼學) 김헌룡, 나이 39세, 본관 경주, 거주지 강릉. ‘유학(幼學)’은 연령의 고하와 상관없이 무위무관(無位無官)의 생원·진사·문과 응시자를 이르는 말이다.
부(父) 신원 : 학생(學生) 김종영(金鐘英). 학생도 유학과 비슷한 말로, 무위무관(無位無官)의 양인을 이르는 말이다.
조(祖) 신원 : 학생 김기(金琦)
증조 신원 : 학생 김세희(金世熙)
외조부 신원 : 학생 권문영(權文榮), 본관 안동(安東).
비봉 하단의 ‘계유시(癸酉試)’라는 기재 및 ‘주시관·부시관·참시관의 성명’에 관한 기재는 응시자가 이 시험에 합격하고 당해 시권을 되돌려 받은 뒤에 참고삼아 추기(追記)한 메모[註記]이다. 비봉의 상단과 하단에 보이는 ‘九雲(구운)’이라는 글자는 시권을 제출한 순서에 때라 매긴 시권의 관리번호 곧 자호(字號)이다. 이 자호는 고권(考券; 시권 평가)을 하기 전에 시권의 본체부(本體部)로부터 피봉부를 잘라내어[割封] 따로 보관하였다가 고권을 마친 후 피봉부의 비봉을 개탁하여 응시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피봉부와 본체부의 할봉선(割封線; 절단선)을 맞붙여 자호를 맞추어봄으로써 시권의 과문과 그 작성자의 동일성을 확인하는[勘合] 기능을 한다. 곧 할봉선과 그 좌우에 쓴 자호는 시권 관리번호로서의 기능을 함과 동시에 분리된 두 쪽의 물건이 원래 동일하거나 하나였음을 증명하는 감합(勘合)의 기능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시권]
이 시권(試券; 과거시험의 답안지)의 작성자는 강릉에 사는 39세의 경주김씨(慶州金氏) 김헌룡(金軒龍)이고, 그 작성시기는 1873년이다. 김헌룡은 김종용의 아들로, 김한룡의 동생이다. 초시·복시·전시를 막론하고 합격한 시권은 원래 관에서 응시자 본인에게 되돌려 주었는데, 위 김헌룡은 이 시권을 되돌려 받은 뒤 비봉(秘封; 신원 기재 후 밀봉하는 부분)의 하단에 ‘계유시(癸酉試)’라는 시험 명칭과 함께 ‘주시관·부시관·참시관의 성명’을 메모[註記]해두었다. 이 메모상 주시관의 관함이 ‘감사(監司)’인데, 이는 곧 ‘강원 감사’를 이른다. 따라서 이 시험이 강원도에서 치르진 향시(鄕試; 초시)임을 알 수 있다.
이 과거시험이 단계상으로는 향시[초시]이지만, 과종(科種)상으로는 진사시인지 문과인지가 미상인데, 이는 조선시대에 부(賦)를 진사시와 문과 두 과거시험에서 모두 고시과목으로 채택·부과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비봉을 할봉(割封; 응시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시관의 考券 직전에 비봉을 잘라내어 별도로 보관함)한 것으로 보아 일단 문과의 시권으로 추정할 수 있겠으나, 이 점 역시 진사시·생원시의 경우에도 효종 2년(1651)에 이르러 할봉하기 시작하였으므로 속단할 수 없다.
고시과목은 ‘부(賦)’이다. 이 부는 과장에서 지은 것이므로, 통상 이를 과부(科賦)라 이른다. 조선시대의 ‘과부’는 과거의 제술시험 과목 중 문학을 시험하기 위해 부과한 부(賦) 형식의 문체로, 압운(押韻)‧대우(對偶)‧평측(平仄)의 격식에서 자유로운 고부(古賦)에 속한다. 시제(試題)는 ‘제월광풍갱별전(霽月光風更別傳)’인데, 이 말은 주자(朱子; 1130-1200)의 「백록동 강회에서 복씨 어른의 시운을 차운함[白鹿講會次卜丈韻]」이라는 시 「백록동 강회에서 복씨 어른의 시운을 차운함[白鹿講會次卜丈韻]」이라는 시(『朱子詩集』 권7에 보이는 이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학교가 황폐해진 지 몇 해이던가, 차가운 연기만 여울 가에 꽉 끼어 있네. 집을 지음엔 다행히 옛 건물을 상상해볼 수 있으나, 이름을 적음엔 옛 저술에 이어붙이기를 허락하지 않네〘동주에게 허락받지 못했음을 이름〙. 청운과 백석이라면 가까스로 취미를 같이 하지만〘송나라의 고사 西澗 劉煥을 두고 이름〙, 제월과 광풍이라면 또 전해줌을 달리 하네〘濂溪 선생 周敦頤를 두고 이름〙. 그 속의 무한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니, 제군들은 괴롭게 출세의 길을 부러워하지 말게나[宮牆蕪沒幾經年, 秪有寒煙鏁澗泉. 結屋幸容追舊觀, 題名未許續遺編[請爲洞主不報]. 靑雲白石聊同趣[謂西澗劉公], 霽月光風更別傳[謂濂溪夫子]. 珍重箇中無限樂, 諸郞莫苦羨騰騫.]”)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따라서 이 부(賦)를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주자의 이 시 내용을 훤히 알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이 부의 내용도 역시 ‘백록동 강회에 임한 주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제월광풍(霽月光風)’은 ‘광풍제월(光風霽月; 비갠 후의 맑은 바람과 깨끗한 달)’과 같은 말인데, 이는 원래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고상하고 말쑥한 인품’을 황정견(黃庭堅, 1045-1105, 북송 때 문장가로, 자가 노직(魯直), 호가 산곡도인(山谷道人)이다. 동파(東坡) 소식(蘇軾)에게 수학하여 장뢰(張耒), 진관(秦觀), 조보지(晁補之)와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로 일컬어진다. 소식과 함께 ‘소황(蘇黃)’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문장과 행서(行書)ㆍ초서(草書)에 모두 뛰어났다.)이 칭찬하면서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주자의 위 시에서는 평측(平仄)을 맞추기 위해 ‘광풍제월’을 ‘제월광풍’이라고 말을 바꾸어 놓았다. 이 부는 압운(押韻)을 하지 않으면서 1구(句)를 6언(言)으로 만들되 제4자에 허사(虛辭)를 사용한, 조선 후기의 전형적 형식의 과부(科賦)이다. 이 형식의 과부는 대개 30련으로 구성되었는데, 김헌룡의 과부도 30련의 길이로 작성되었다. 다만 김헌룡의 이 과부는 특이하게도 맨 마지막 구(句)를 온전한 연(聯)으로 만들지 않은 채 외짝의 상태로 놓아두었다.
과차(科次; 성적의 등급)는 ‘차중(次中)’이고, 등제(等第; 합격 석차)는 ‘이지륙(二之六)’ 곧 ‘두 번째 등급의 제6위’이다. 과차는 상상·상중·상하, 중상·중중·중하, 하상·하중·하하로 나누어 합격권으로 치고, 그 아래로 또 차상·차중·차하·갱·외 등으로 나누어 불합격으로 처리함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합격 인원수를 다 채우지 못할 경우에는 차상 이하의 과차에서도 선발하였으므로, 김헌룡은 차중의 성적으로도 합격권에 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 등제 ‘이지륙(二之六)’은 진사시라면 전체 45인 중 제11위로, 문과라면 15인 중 제9위로 각 추정할 수 있다. 비봉(秘封)과 시제(試題) 사이의 ‘九雲(구운)’이라는 글자는 시권을 제출한 순서에 때라 천자문의 매 글자를 순차적으로 열 번씩 사용하여 매긴 자호(字號; 시권 관리번호)이다. 그러므로 ‘九雲(구운)’은 곧 329번째로 제출된 시권임을 나타낸다. 자호는 대개 비봉과 시제 사이의 공란 부분 중의 세 곳에 적는데, 전체적으로 삼각형을 이룬다. 삼각형 꼭지점 부분의 자호를 크게 쓰고, 고권하기 전에 이 글자의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세로로 잘라서 비봉과 시권의 본체부를 서로 분리시킨 다음에 본체부만 가지고 채점을 하는 것이다. 채점이 끝나면 비봉을 도로 꺼내어 와서 그 자호를 맞대어 맞추어봄으로써[勘合] 응시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된다.
원문 / 국역
霽月光風更別傳
臨風說我濂翁,
君子亭亦昔登.
欣同趣於山水,
復生色於宮墻.
傳之人而絃誦,
更想像於光霽.
要吾道之在玆,
緬前修之無墜.
周子傳夫聖道,
像蓋在於風月.
善形容於有道,
仰珍重於無極.
千峰鏁以澗烟,
亦幾年於蕪沒.
傳洞名而白鹿,
講會開於今日.
追舊觀而結屋,
集諸生而講業.
無限樂於箇裏,
士濟濟而咸聚.
登古院而自得,
憶茂叔之遺儀.
地丹崖而翠壁,
趣白石而靑雲.
傳遺編而更續,
詎讓與於別人.
雖未許於題名,
殆庶幾於樂道.
儀朗月而許詢,
像和風而顔氏.
梧桐霽而柳光,
別般傳於濂溪.
軒窓挹於蒼翠,
絃誦答於潺湲.
吟風返而弄月,
興入翠於前山.
意圖書而不盡,
樂仁智而無邊.
奇絶處而可到,
且莫苦於騰羨.
斯有光於攄義,
允無呑於蘊旨.
旬姑餘而晦若,
流愷悌而凝思.
知關鍵之所在,
亦樞杻之攸由.
靖潛處而永覩,
區百家之美譚.
羌不違於赫戲.
固所有於玄覽,
自一本而渾皓.
至萬象而昭森,
陳旣往而可復.
越若來而疇比,
溢穹宇之聲敎.
渾品物之輪菌,
太和蕩而元氣.
道渾成其自然,
索衆孤於奧域.
台後辰而擊節,
掇蕪辭而興喟.
01.臨風說我濂翁, 바람을 받으면서 우리의 염계(濂溪)1)옹에 대해 설명했으니,
君子亭亦昔登. 그 곳 군자정(君子亭)에도 또한 옛날에 올라가보았지.2)
02.欣同趣於山水, 산수(山水)에 취미가 같음을 기뻐하니,
復生色於宮墻. 다시 서원(書院)의 담장에 생색을 더하네.
03.傳之人而絃誦,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어서 시가(詩歌)로 읊조려지니,
更想像於光霽. 더욱 광풍제월(光風霽月)3)에 대해 상상해본다네.
04.要吾道之在玆, 요컨대 우리의 유도(儒道)가 여기에 있으니,
緬前修之無墜. 회상컨대 선현들이 그 도를 떨어뜨리지 않았네.
05.周子傳夫聖道, 주렴계(周濂溪) 선생께서 성인의 도를 전해주셨으니,
像蓋在於風月. 선생의 모습은 대개 광풍제월에 있었네.
06.善形容於有道, 도 지녔음을 잘 형용하였으니,
仰珍重於無極. 무극(無極)4)을 소중히 여긴 데 대해 우러러보네.
07.千峰鏁以澗烟, 수많은 산봉우리가 개울과 연기로 꽉 잠기어 있으니,
亦幾年於蕪沒. 또한 얼마나 오래도록 황폐해져 있었던가.
08.傳洞名而白鹿, 골짜기 이름을 전하여 백록동(白鹿洞)이라 하였는데,
講會開於今日. 오늘날에 강회(講會)를 열었다네.
09.追舊觀而結屋, 옛적의 건물을 상상하여 집을 짓고
集諸生而講業. 여러 학생들을 불러 모아 학업을 닦는구나.
10.無限樂於箇裏, 그 속에 무한한 즐거움이 있으니,
士濟濟而咸聚. 수많은 선비들이 모두 다 모여들었네.
11.登古院而自得, 옛 서원에 들어가 스스로 깨우치면서
憶茂叔之遺儀. 주무숙(周茂叔; 주돈이) 선생께서 남긴 법도를 생각하네.
12.地丹崖而翠壁, 붉은 벼랑과 푸른 절벽에 터전을 잡고
趣白石而靑雲. 백석과 청운을 취미삼아 은거하였지.
13.傳遺編而更續, 옛 저술을 전해주어 다시 잇게 하였으니,
詎讓與於別人. 어찌 다른 사람에게 양여하겠는가.
14.雖未許於題名, 비록 이름 쓰기를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殆庶幾於樂道. 자못 도를 즐기기에는 근사하였지.
15.儀朗月而許詢, 의표(儀表)는 밝은 달이니 허순(許詢)5)과 같고,
像和風而顔氏. 모습은 혼화한 바람이니 안자(顔子)6)와 같구나.
16.梧桐霽而柳光, 오동나무의 제월(霽月)과 버드나무의 광풍(光風)은
別般傳於濂溪. 특별히 염계 선생에게서 전수되었네.
17.軒窓挹於蒼翠, 헌창은 푸른 산 빛을 거두어들이고,
絃誦答於潺湲. 거문고의 읊조림은 시내 물소리에 화답하네.
18.吟風返而弄月, 바람을 읊조리고 돌아와 달을 감상하니
興入翠於前山. 흥취가 앞산에서 푸르른 빛깔에 스며드네.
19.意圖書而不盡, 『태극도설』과 『통서』를 생각함에 다함이 없고
樂仁智而無邊. 어짊과 지혜를 좋아함에 끝이 없구나.
20.奇絶處而可到, 기절(奇絶)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且莫苦於騰羨. 세속의 출세에 괴로워하지 말 일이지.
21.斯有光於攄義, 그리하면 의(義)를 발산함에 광채가 있게 되어
允無呑於蘊旨. 참으로 심오한 취지를 날[生]로 삼킴이 없게 되리라.
22.旬姑餘而晦若, 열흘에는 고여(姑餘)의 바다를 보고 그믐에는 해약(海若)을 보니,
流愷悌而凝思. 화락한 풍도를 퍼뜨리며 정신을 집중하였구나.
23.知關鍵之所在, 관건(關鍵)이 있는 곳을 알겠으니,
亦樞杻之攸由. 역시 추뉴(樞紐)7)가 말미암은 바이지.
24.靖潛處而永覩, 조용히 은거하면서 영구히 살펴보고,
區百家之美譚. 여러 사람들의 미담을 구별하네.
25.羌不違於赫戲. 만약 빛나는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固所有於玄覽, 실로 현묘한 관찰을 통해 얻는 바가 있으리라.
26.自一本而渾皓. 하나의 근본으로부터 시작하여 혼연히 빛나고
至萬象而昭森, 만상(萬象)에 이르러 밝고 삼엄하니,
27.陳旣往而可復. 기왕의 일을 진술하여 실천할 수 있다면
越若來而疇比, 장래에는 누구와 비교하겠는가.
28.溢穹宇之聲敎. 하늘에 가득 흘러넘치는 명성과 교화이니,
渾品物之輪菌, 만물과 혼합하여 구불구불 서리어 있네.
29.太和蕩而元氣. 천지간의 화기가 곧 원기이니,
道渾成其自然, 천도가 혼연히 이루어졌음은 곧 저절로 그러하였네.
30.索衆孤於奧域. 오지에서 많고 적은 사람들을 찾아내었으니,
台後辰而擊節, 뒤에 태어난 나는 무릎을 치네.
31.掇蕪辭而興喟. 무딘 글을 짓고 탄식을 발하노라.
1) 염계(濂溪) : 주돈이(周敦頤, 1017-1073)를 이르니, 자(字)가 무숙(茂叔)이고 호(號)가 염계(濂溪)이다. 만년에 염계에 살았다. 그를 높여서 주자(周子)라고도 일컫는다. 북송(北宋) 시대의 유학자(儒學者)로, 불교(佛敎)와 도교(道敎)의 철리(哲理)를 응용한 유교철학(儒敎哲學)을 창시하여 송학(宋學)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유가(儒家)의 도통(道統)이 맹자(孟子) 이후 1,400년 동안 끊어졌다가 주렴계(周濂溪) 때 다시 이어졌다고 한다. 저서로 『태극도설(太極圖說)』, 『통서(通書)』 등이 있다. 주자(朱子)에게 큰 영향을 끼진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가 염계의 문인이다.
2) 바람을 받으면서 …… 올라가보았지 : 주자(朱子)의 「군자정(君子亭)」 시의 구절 중 “지팡이 짚고 서늘한 물가에 임하고, 옷 풀어헤친 채 저녁 바람 받으며 서 있네. 몇 명의 군자들을 만나면 나를 위해 염옹 에 대해 설명해 주네.”를 인용한 말이다.〔『朱子全書』 권4, 「君子亭」, “倚杖臨寒水, 披衣立晩風. 相逢數君子, 爲我說濂翁.”〕
3) 광풍제월(光風霽月) : 일반적으로 ‘고상한 인품’을 비유하여 표현하는 말인데, 원문의 ‘광제(光霽)’는 이의 준말이다. 원래 황정견(黃庭堅)이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고상하고 말쑥한 인품’을 칭찬하면서 ‘광풍제월’에 비유하였다.
4) 무극(無極) : 우주만물의 본원을 이른다. 일찍이 주돈이가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동(動)이 극에 달하면 정(靜)해지며, 정(靜)하여 음(陰)을 낳고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한다. ……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고, 태극은 원래 무극이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라 하였다.
5) 허순(許詢) : 동진(東晋) 때의 고결한 은사로, 자(字)가 현도(玄度)이다. 그의 벗 유윤(劉尹)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하면, 문득 현도가 생각난다.[淸風朗月, 輒思玄度.]”라고 하였다.〔『世說新語』 「言語」〕
6) 안자(顔子) : 공자(孔子)의 수재자인 안회(顔回)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자(字)가 자연(子淵)이므로 흔히 안연(顔淵)이라 이른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학문과 덕이 높아 아성(亞聖)으로 일컬어진다. 32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다.
7) 추뉴(樞紐) : ‘중추’ 또는 ‘요체’의 뜻으로, ‘관건’과 비슷한 말이다. 원문에는 ‘樞杻(추뉴)’로 기재되어 있으나, 문의로 볼 때 이는 ‘樞紐(추뉴)’의 오기라고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