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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13_01_A00452_001
- ㆍ입수처
- 양평 덕수이씨 문정공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04년 이기진 간찰 / 李基鎭 簡札
- ㆍ발급자
-
이기진(李基鎭)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황(李潢, 1755~)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04년 3월 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子三月初四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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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27 × 45.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04년 3월 4일에 이기진(李基鎭)이 아들 이황(李潢, 1755~?)에게 보낸 편지로, 병환·제사·친족 왕래·집안 대소사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조선 후기 가족서신의 전형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04년 3월 4일에 이기진(李基鎭)이 아들 이황(李潢, 1755~?)에게 보낸 편지로, 병환·제사·친족 왕래·집안 대소사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조선 후기 가족서신의 전형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발신자는 제사 일정, 지방 관속의 이동, 친족 간 상부상조 체계, 약재 확보, 친족 성소(省掃) 의례, 매장 준비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실질적 지시를 내린다. 이러한 구성은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부친이 아들에게 가사를 종합적으로 지휘했던 모습을 드러내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편지는 먼저 이전에 세 차례 보낸 편지를 모두 확인했다며 위로의 뜻을 밝히고, 이어 그 뒤의 몸 상태가 어떠한지 다시 묻고 아들이 앓고 있는 증상이 최근 어떠한지 염려한다. 이 증상은 약을 가볍게 쓸 수 없는 까다로운 병이기에 근심이 크다고 강조한다. 이어 그는 자신의 일상은 여전히 고단하며, 부인 역시 편할 날이 적어 근심이 깊다고 말한다. 또한 집안의 어른이 단성 관아에 다녀오고 다시 홍주 관아에 부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으나 아직 편지가 없어 더욱 걱정된다고 덧붙인다. 중반부에 이르러 발신자는 김한호(金漢豪)가 도착하지 않아 치료를 받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며, 아들이 홍주 관아로 떠날 때 김한호를 동행시킬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어 서질 안서윤(安錫胤)이 곁에서 돕고 있어 그의 존재가 절실하다며 감사와 고마움을 내비친다. 자신은 이달 말 이전에 성소(省掃)를 하나, 안 조카가 없으면 감당하기 어려워 반드시 다시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아들이 힘써 달라고 요청한다. 이어 얼음 빙고(氷庫)가 이제야 겨우 완성되었고, 박자주(朴姊主)의 장례 일정은 바짝 다가왔으나 자신은 미관말직에 묶여 몸을 뺄 수 없어 상중에 직접 가보지 못하는 처지라 통분함을 토로한다. 후반부에서는 박 형주(朴兄主)와 사후(師厚)에게 편지를 보내고, 하인들을 시켜 평촌(坪村) 산자락까지 상용 물품을 보내게 하라고 지시한다. 이어 친족을 직접 만나 작별하지 못하는 심정을 밝히고, 아들의 여행길 안전을 거듭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대인의 편지를 잘 전달받았는지 묻고 서신을 마무리한다.
제목 없음
答潢兒書 封
前後三度書 俱見之 爲慰甚矣 未委信后 身上復何如 汗出之症 近日如何 此症難悶 用藥亦不可輕易爲之 爲慮尤極 洪衙行 聞以今初七間 奉祠廟几筵離發云 想追惟往昔 益復罔極矣 悵慮交極 此中一味勞攘 汝慈亦寧日常少 悶甚悶甚 聞汝大人 頃往丹衙 近當返莅洪衙云 然耶 久未得信 甚慮甚慮 金醫漢豪至今無消息 甚鬱 汝洪衙行時 與金醫偕行 則幸甚幸甚 安庶姪錫胤非但極緊於傍助 不得省阡 已至三年 情理痛迫 如何盡言 極欲以今月晦前 作省掃之行 若無安姪 則將不得如意 玆作書於安庶姪 要今望後 復來此處 汝亦力勸送之爲好 氷庫事 今初吉始粗完矣 朴姊主窆事已迫 而身繫微官 末由抽身 竟未克進往 庶哀於掩壙之時 情理痛絶 摧痛曷可勝言 此去便作書於朴兄主曁師厚甥 令奴輩卽指坪村山次 以送如何 無緣送別 懷緖實難狀言 只望行李保重 眩迷倩筆 姑不多及 大人前書傳納如何
甲子三月初四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