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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13_01_A00442_001
- ㆍ입수처
- 양평 덕수이씨 문정공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01년 이여 간찰 / 李畬 簡札
- ㆍ발급자
-
이여(李畬, 1645~1718)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심(李𧀯, 1645~1701)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701년 3월 2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辛巳三月卄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0.2 × 45.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701년 3월 26일에 이여(李畬, 1645~1718)가 이심(李𧀯, 1645~1701)에게 보낸 답장으로, 병환에서 막 벗어난 발신자가 상대의 서신을 받고 감격스러워하는 정서와, 동시에 선박 관련 송사·진정 절차를 처리하는 실무적 상황이 함께 드러난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701년 3월 26일에 이여(李畬, 1645~1718)가 이심(李𧀯, 1645~1701)에게 보낸 답장으로, 병환에서 막 벗어난 발신자가 상대의 서신을 받고 감격스러워하는 정서와, 동시에 선박 관련 송사·진정 절차를 처리하는 실무적 상황이 함께 드러난다.
편지의 앞부분에는 병후의 첫 필담이라는 정서적 의미가, 뒷부분에는 고을 내 선박 분쟁과 관련한 공문서의 진위 확인, 아전(衙前)의 심문 과정, 사안의 번복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 지방 행정의 실제 작동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이심은 본관은 덕수, 자는 자방(子芳)이다.
발신자는 먼저 고을 사람들이 배를 요구하며 보낸 장계를 상대가 전달했다는 소식을 받고 깊이 감사하며, 비록 친필은 아니었지만 병이 나은 뒤로 처음 받아 본 글씨라 다시 살아난 얼굴을 보는 듯 위안이 되었다고 밝힌다. 이어 그가 조절과 요양을 거쳐 점차 회복하고 있으며, 이미 출행 일정까지 정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처음 놀라 크게 근심하던 때와 비교하면 신의가 도운 일이라 느낀다고 말한다. 그 뒤 오늘이 출발 예정일이지만 실제로 계획대로 떠났는지는 알 수 없고, 자신이 은진·니산·천안·죽산으로는 역인을 보내 서신을 부쳤으며, 공주 쪽에는 별도로 글을 올렸다고 하면서, 이들 지역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리고 역인의 전달 또한 지체되기 쉬워 결과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며칠 전 혜청(惠廳) 소속 선박 담당자가 제출한 장계를 근거로 편지를 작성하여 신보(愼甫)에게 보냈고, 그 장계와 관사(關辭)도 함께 등사하여 전달했다고 알린다. 이어 과연 그 문서가 도착했는지, 그리고 그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를 묻는다. 그는 관련 장계의 진술이 사실과 달리 조작된 것이라 판단해 최 아전에게 캐물었더니 문서의 진술과 관계된 말들이 조금씩 달라졌고, 그래서 감색(監色)의 형추(刑推)가 감형되었음을 덧붙인다. 추신에서는 신보의 편지가 때마침 도착하여 다시 답장을 보냈으나, 전달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며 서신을 맺는다. 이어 붙은 추신에서는 이자(李𤲸)에게 이전에 보내야 했던 서신을 제때 묶어 보내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큰 배가 아직 준비되지 않아 서류 송달이 지체되고 있음을 밝힌 뒤, 곤후(坤候)는 병환이 심해 약 한 첩에만 의지하고 있다며 다급한 심정을 토로한다.
제목 없음
子芳 奉謝狀 (手決) 謹封
邑人持求船狀者 昨來傳書 雖非手筆 呼草書名 乃病後初見也 眞若再生顔面 慰幸何可言 仍審調攝漸勝 行計已定 視當初驚慮之時 殆是神佑矣 今日是行期 未知如計離發否 恩津尼山天安竹山 則生已作書付邸人 公州則倩進台送書 其去俱累日 而邸人傳書多滯 是未可知也 數昨因惠廳船人呈狀作書 並謄其狀及關辭 送于愼甫 要卽傳矣 到否 其狀皆出誣罔 故令崔吏詰問 則狀辭與關辭 又稍改 而減監色刑推之令矣 愼甫書適至 復此寄書未定及傳與否 不悉 謹狀
辛巳三月卄六日
治從
仲培前未能各狀同照 如何 京江船大者並送西關來人 以未得船方滯矣 坤候只一藥 煎迫煎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