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A013_01_A00250_001
- ㆍ입수처
- 양평 덕수이씨 문정공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644년 이식 관교 / 1644년 李植 官敎
- ㆍ발급자
-
인조(仁祖, 1595~1649, 조선)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식(李植, 1584~164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645년 5월 22일간지연도왕력 순치 원년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50 × 7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644년 5월 22일 인조가 이식을 자헌대부 행 사헌부대사헌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성균관사 동지경연춘추관사로 임명한 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645년(順治 원년) 5월 22일에 이식(李植)을 자헌대부 행 사헌부대사헌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성균관사 동지경연춘추관사(資憲大夫 行 司憲府大司憲 兼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成均館事 同知經筵春秋館事)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이식(李植, 1584년∼1647년)은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자는 여고(汝固)이고 호는 택당(澤堂) · 남궁외사(南宮外史) · 택구거사(澤癯居士)이며, 좌의정 이행(李荇)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좌찬성에 증직된 이안성(李安性)이고 어머니는 무송 윤씨(茂松尹氏)로 공조참판 윤옥(尹玉)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년)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1613년 세자시강원 설서를 거쳐 1616년(광해군 8년) 북평사(北評事)가 되고, 이듬해 선전관청 선전관을 지냈다. 1618년(광해군 10년) 폐모론에 반대해 정계에서 은퇴한 후 경기도 지평(砥平)으로 낙향했다. 그 후에 여러 관직을 거쳐 1627년(인조 5년)에는 충주 목사가 되었다. 1641년(인조 19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찬수를 주관하였다. 그 뒤 이조와 예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문집으로 『택당집(澤堂集)』이 있다. 신흠(申欽) · 이정구(李廷龜) · 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로 꼽혔다.
자헌대부(資憲大夫)는 조선 시대 정이품(正二品) 동서반(東西班)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정이품의 하계(下階)로서 정헌대부(正憲大夫)보다 아래 자리이다.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은 대사헌은 조선 시대, 언론기관 가운데 하나인 사헌부의 수장으로 종2품직이다. 사헌부는 신료들에 대한 감찰 및 탄핵, 국왕에 대한 간쟁, 경연 참석, 5품 이하의 서경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대사헌은 사헌부의 활동 전반을 총괄하는 책임자였다.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은 홍문관 대제학은 조선 시대 학문과 문한(文翰)을 총괄하는 최고위직으로, 정2품의 품계를 가진 명예직이다. 이 직위는 홍문관, 예문관, 성균관의 세 가지 최고 직위를 겸직해야만 '문형(文衡)'이라는 별칭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는 학문의 권위와 인격을 동시에 인정받는 지위였다.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은 조선 시대에, 예문관의 영예문관사 밑에서 실무를 맡아보던 정이품 벼슬이다.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는 조선 시대 성균관(成均館)에 둔 으뜸 벼슬로 정이품(正二品)이며 정원은 1원이다. 대제학(大提學)이 정례대로 겸임하였다. 동지경연춘추관사(同知經筵春秋館事)는 동지경연사와 그리고 동지춘추관사의 준말이다.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는 조선 시대 경연청(經筵廳)에 둔 종이품(從二品) 관직인 동지사(同知事)이다. 타관(他官)이 겸직하였다.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는 조선 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이다. 춘추관의 다른 관직과 마찬가지로 타관의 겸직이었다. 행(行)은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行’자를 붙였다. 순치(順治) 밑에 임금의 시명지보가 찍혀있다. 자료가 훼손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