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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13_01_A00227_001
- ㆍ입수처
- 양평 덕수이씨 문정공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619년 이식 관교 / 1619년 李植 官敎
- ㆍ발급자
-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조선)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식(李植, 1584~1647, 조선)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47.4 × 57.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대체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619년 4월 24일 광해군이 이식을 조산대부 행 병조좌랑으로 임명한 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A013_01_A00227_001_001
이 자료는 문정공(文靖公)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년∼1647년)의 교지 묶음본 표지이다. 그러나 이 교지 묶음본 표지는 임금이 내린 공식적인 교지 묶음본 표지가 아니다, 후대 자손들이 조상인 문정공(文靖公)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년∼1647년)의 수많은 교지를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보관하며, 손쉽게 열람하기 위해 책 형식으로 꾸민 것으로 보인다.
맨 오른쪽에 책 만든 후 철한 모습이 보인다. 맨 우측 상단에 세로로 문정공(文靖公)이라고 적혀있다. 문정공(文靖公)은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년∼1647년)의 시호(諡號)이다. 우측 하단에 세로로 만력 47년(萬曆 四十七年), 순치 원년 – 3년(順治 元年 - 三年)까지 문서라고 적혀있다. 그 옆에 6권이라고 적혀있다(券之六). 7(七)을 지우고 육(六)으로 수정했다. 표지 중앙에서 조금 위쪽에 교지(敎旨)라고 책 제목이 쓰여있다.
*이 표지는 교지가 아니고 후대에서 만들어 첨가했기에 교지 해제에서 빼야 한다
A013_01_A00227_001_003
이 자료는 문정공(文靖公)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년∼1647년)의 교지 묶음본 목차이다. 그러나 이 교지 묶음본 목차는 임금이 내린 공식적인 교지 묶음본 목차가 아니다, 후대 자손들이 조상인 문정공(文靖公)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년∼1647년)의 수많은 교지를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보관하며, 손쉽게 열람하기 위해 책 형식으로 꾸민 것으로 보인다.
목차 맨 우측 상단에 세로로 공(公)의 휘(諱)는 식(植)이고, 호(號)는 택당(澤堂)이라고 적혀있다. 그 밑에 세로로 36세(三十六歲) 시기에 해당(當)한다고 적혀있다. 또 61세~63세(六十一歲~六十三歲) 시기에 해당(當)한다고 적혀있다. 목차는 보기 좋게 세로로 6부분으로 쓰여있다. 1. 맨 위 부분은 받은 년도 2. 1번 밑은 받은 월 일 3. 2번 밑은 교지 내린 왕과 재위 년도 4. 3번 밑은 받은 품계 5. 4번 밑은 서기(西紀) 몇 년과 간지가 체계적으로 적혀있다. 6. 맨 좌측 하단에 세로로 29장(二十九杖)이라고 적혀있다. 29장은 받은 교지 숫자이다.
*이 목차는 교지가 아니고 후대에서 만들어 첨가했기에 교지 해제에서 빼야 한다. 서기(西紀) 몇 년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면, 근대에 작성한 것 같다.
A013_01_A00227_001_004
이 문서는 1619년(만력 47년) 4월 24일에 광해군(光海君)이 이식(李植)을 조산대부 행 병조좌랑(朝散大夫 行 兵曹佐郎)으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이식(李植, 1584년∼1647년)은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자는 여고(汝固)이고 호는 택당(澤堂) · 남궁외사(南宮外史) · 택구거사(澤癯居士)이며, 좌의정 이행(李荇)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좌찬성에 증직된 이안성(李安性)이고 어머니는 무송 윤씨(茂松尹氏)로 공조참판 윤옥(尹玉)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년)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1613년 세자시강원 설서를 거쳐 1616년(광해군 8년) 북평사(北評事)가 되고, 이듬해 선전관청 선전관을 지냈다. 1618년(광해군 10년) 폐모론에 반대해 정계에서 은퇴한 후 경기도 지평(砥平)으로 낙향했다. 그 후에 여러 관직을 거쳐 1627년(인조 5년)에는 충주 목사가 되었다. 1641년(인조 19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찬수를 주관하였다. 그 뒤 이조와 예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문집으로 『택당집(澤堂集)』이 있다. 신흠(申欽) · 이정구(李廷龜) · 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로 꼽혔다.
조산대부(朝散大夫)는 조선 시대에, 종사품 상(上) 문관의 품계이다. 고종 2년(1865)부터 종친의 품계와 같이 썼다. 병조좌랑(兵曹佐郎)은 조선 시대 병조(兵曹)에서 근무하던 정6품 문관 관직으로, 병조의 실무를 담당하는 핵심 직책 중 하나였다. 인사·군사·경비 등 병조의 다양한 사무를 담당했다. 행(行)은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行’자를 붙였다. 만력(萬曆) 밑에 임금의 시명지보가 찍혀있다. 자료가 훼손되어 있다. 이 자료는 연대로 보면 끼어 들었다. 바로 잡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