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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13_01_A00078_001
- ㆍ입수처
- 양평 덕수이씨 문정공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교첩(敎牒)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599년 이안성 교첩 / 1599年 李安性 敎牒
- ㆍ발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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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吏曹)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안성(李安性, 1554~1613)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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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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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9년간지연도 기해년(己亥年)왕력 선조 32년추정시기본문 萬曆二十七年十二月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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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9.2 × 57.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대체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599년(선조 32) 이조(吏曹)에서 여절교위 부사과(勵節校尉 副司果) 이안성(李安性)을 선교랑 군자감 주부(宣敎郎 軍資監 主簿)로 임명하기 위해 발급한 교첩(敎牒).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599년(선조 32) 12월에 이조(吏曹)에서 선조(宣祖)의 왕명을 받아 여절교위 부사과(勵節校尉 副司果) 이안성(李安性)을 선교랑 군자감 주부(宣敎郎 軍資監 主簿)로 임명하기 위해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이안성(李安性, 1554~1613)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아버지는 이섭(李涉)이고, 아들은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이며, 장인은 윤옥(尹玉, 1511~1584)이다. 사후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여절교위(勵節校尉)는 조선 시대 종6품 무관(武官)에게 주던 품계로, 상계(上階)의 품계이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종6품 무관의 상계는 승의교위(承義校尉), 하계(下階)는 수의교위(修義校尉)로 정하였다가 이후 상계는 여절교위(勵節校尉), 하계는 병절교위(秉節校尉)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부사과(副司果)는 조선 시대 오위(五衛)의 종6품 관직이다. 관계상(官階上)으로는 여절(勵節)·병절교위(秉節校尉)라 별칭되었다. 선교랑(宣敎郎)은 조선 시대 종6품 상계(上階) 문관(文官)의 품계이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종6품 문관의 상계는 선교랑, 하계는 선무랑(宣務郞)으로 정하였다. 군자감(軍資監)은 군사상에 필요한 물자를 관장하던 관서로, 효시는 궁예(弓裔)가 세운 태봉(泰封)의 납화부(納貨府)와 물장성(物藏省)이다. 주부(主簿)는 관서의 문서와 부적(符籍)을 주관하던 종6품 관직이다.
교첩(敎牒)은 주로 5품 이하의 문·무관를 임명할 때 사용되었다. 5품 이하는 낭계(郞階)라 하며 대간(臺諫)의 서경(署經)을 거친 뒤 왕명을 받아 이조(吏曹) 또는 병조(兵曹)에서 임명하였다. 문서의 왼쪽에 작은 글씨로 ‘관왕묘의 감조낭청으로 승서하라는 전지를 받들었다(傳 關王廟 監造郎廳 陞敍事承)’라고 임명 사유가 적혀 있다. 그 밑에 이 교첩에 관련된 '정랑(正郎)', '판서 신 이 서압(判書 臣 李 署押)', '참판(參判)', '참의(參議)', '가낭청 신 최 서압(假郎廳 臣 崔 署押)'이라고 적혀 있다. 관왕묘(關王廟)는 중국 후한(後漢) 이후 삼국 시대 촉(蜀)의 장수 무안왕(武安王) 관우(關羽)를 숭상하여 세운 사당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지원한 명나라 군에 의해 관우의 사당이 소개되었다. 관왕묘는 조선 후기에 민간 신앙으로 정착하여 한양, 성주, 안동, 전주, 남원, 고금도 등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낭청(郎廳)은 조선 후기에 실록청(實錄廳)·도감(都監) 등의 임시 기구에서 실무를 맡아보던 당하관(堂下官) 관직으로, 각 관서에서 차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