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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13_01_A00058_001
- ㆍ입수처
- 양평 덕수이씨 문정공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97년 이노술 관교 / 1797年 李魯述 官敎
- ㆍ발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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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 1752~180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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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술(李魯述, 1741~1799)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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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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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간지연도 정사년(丁巳年)왕력 정조 21년추정시기본문 嘉慶二年十月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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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53 × 7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97년(정조 21) 정조(正祖)가 이노술(李魯述)을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折衝將軍 行 龍驤衛 副護軍)으로 임명한 관교(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797년(정조 21) 10월 정조(正祖)가 이노술(李魯述)을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折衝將軍 行 龍驤衛 副護軍)으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이노술(李魯述, 1741~1799)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1768년(영조 44) 식년시 생원에 장원으로 입격하였고, 같은 해 진사에 3등 33위로 입격하였다. 1770년(영조 46) 정시 문과에 병과 2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한림(翰林)·부교리(副校理)·부수찬(副修撰)·황해도사(黃海都事)·승지(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1773년(영조 49) 이면수(李勉修)와 춘추관 겸직을 두고 싸움을 벌인 죄로 양재역(良才驛)에 유배되었으나, 12일 뒤에 풀려났다. 정조 즉위년인 1776년(영조 52)에 김귀주(金龜柱)와 김한기(金漢耆) 등의 권신들을 처벌할 것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1777년(정조 1)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힌 죄로 제천현(堤川縣)에 유배되고 도형(徒刑) 3년을 받았다. 이후 약 2개월 만에 특별히 석방되었다.
절충장군(折衝將軍)은 조선 시대 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명이다. 무산계 가운데 가장 높은 관계로 규정되었다. 용양위(龍驤衛)는 조선 초·중기에 군사 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던 오위(五衛) 중에 하나이다. 부호군(副護軍)은 조선 시대 5위(五衛)의 종4품 관직으로 정략장군(定略將軍)·선략장군(宣略將軍)이라 별칭되었다.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행(行)’자를 붙였다. 가경(嘉慶) 밑에 임금의 시명지보가 찍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