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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13_01_A00051_001
- ㆍ입수처
- 양평 덕수이씨 문정공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98년 이노술 관교 / 1798年 李魯述 官敎
- ㆍ발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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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 1752~180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노술(李魯述, 1741~1799)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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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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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간지연도 무오년(戊午年)왕력 정조 22년추정시기본문 嘉慶三年六月十四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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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54.2 × 73.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98년(정조 22) 정조(正祖)가 이노술(李魯述)을 통정대부 승정원좌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 承政院左副承旨 兼 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으로 임명한 관교(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798년(정조 22) 6월 14일에 정조(正祖)가 이노술(李魯述)을 통정대부 승정원좌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 承政院左副承旨 兼 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으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이노술(李魯述, 1741~1799)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1768년(영조 44) 식년시 생원에 장원으로 입격하였고, 같은 해 진사에 3등 33위로 입격하였다. 1770년(영조 46) 정시 문과에 병과 2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한림(翰林)·부교리(副校理)·부수찬(副修撰)·황해도사(黃海都事)·승지(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1773년(영조 49) 이면수(李勉修)와 춘추관 겸직을 두고 싸움을 벌인 죄로 양재역(良才驛)에 유배되었으나, 12일 뒤에 풀려났다. 정조 즉위년인 1776년(영조 52)에 김귀주(金龜柱)와 김한기(金漢耆) 등의 권신들을 처벌할 것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1777년(정조 1)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힌 죄로 제천현(堤川縣)에 유배되고 도형(徒刑) 3년을 받았다. 이후 약 2개월 만에 특별히 석방되었다.
통정대부(通政大夫)는 조선 시대 정삼품(正三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정3품의 상계(上階)로서 통훈대부(通訓大夫)보다 상위 자리로 당상관(堂上官)의 말미이다. 승정원(承政院) 좌부승지(左副承旨)는 조선 시대 승정원(承政院)의 정3품 당상관(堂上官)으로 정원은 1명이다. 왕명의 출납과 육조(六曹)의 업무를 나누어 맡았다. 경연(經筵) 참찬관(參贊官)은 조선 시대 국왕에게 경서(經書) 강론 및 경연(經筵)에 참여하였던 정3품의 당상관 직책이다. 왕조 시대에 가장 명예로운 벼슬로 여러 가지 특별 대우를 받는 청화직(淸華職)이었다. 춘추관(春秋館) 수찬관(修撰官)은 조선 시대 춘추관에서 시정(時政)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3품 당상관 벼슬이다. 승정원의 승지, 홍문관(弘文館)의 부제학(副提學)이 겸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