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A013_01_A00042_001
- ㆍ입수처
- 양평 덕수이씨 문정공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74년 이노술 관교 / 1774年 李魯述 官敎
- ㆍ발급자
-
영조(英祖, 1694~1776)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노술(李魯述, 1741~1799)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774년간지연도 갑오년(甲午年)왕력 영조 50년추정시기본문 乾隆三十九年八月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4.7 × 74.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74년(영조 50) 영조(英祖)가 이노술(李魯述)을 어모장군 행 용양위 부사과(禦侮將軍 行 龍驤衛 副司果)로 임명한 관교(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774년(영조 50) 8월에 영조(英祖)가 이노술(李魯述)을 어모장군 행 용양위 부사과(禦侮將軍 行 龍驤衛 副司果)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이노술(李魯述, 1741~1799)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1768년(영조 44) 식년시 생원에 장원으로 입격하였고, 같은 해 진사에 3등 33위로 입격하였다. 1770년(영조 46) 정시 문과에 병과 2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한림(翰林)·부교리(副校理)·부수찬(副修撰)·황해도사(黃海都事)·승지(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1773년(영조 49) 이면수(李勉修)와 춘추관 겸직을 두고 싸움을 벌인 죄로 양재역(良才驛)에 유배되었으나, 12일 뒤에 풀려났다. 정조 즉위년인 1776년(영조 52)에 김귀주(金龜柱)와 김한기(金漢耆) 등의 권신들을 처벌할 것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1777년(정조 1)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힌 죄로 제천현(堤川縣)에 유배되고 도형(徒刑) 3년을 받았다. 이후 약 2개월 만에 특별히 석방되었다.
어모장군(禦侮將軍)은 조선 시대 서반(西班) 정3품 당하관(堂下官)이다. 정3품 무관을 상(上)·하(下)로 나누었는데 상은 절충장군(折衝將軍)이라 하며 당상관(堂上官)이다. 같은 정3품이라도 당상·당하의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용양위(龍驤衛)는 조선 초·중기 군사 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던 오위(五衛) 중 하나이다. 부사과(副司果)는 조선 시대 오위(五衛)에 속한 종6품 무관 벼슬이다. 녹봉을 주기 위한 직책으로 현직에 있지 않은 문·무관, 그리고 기타 잡직에 있는 사람 가운데서 등용하였다.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행(行)’자를 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