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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402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3년 신응조 관교 / 申應朝 官敎
- ㆍ발급자
-
고종(高宗)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응조(申應朝, 1804~1899)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3년 6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同治十二年閏六月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4.5 × 7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고종(高宗) 10년(1873)에 신응조(申應朝)를 겸 지의금부사(兼 知義禁府事)로 임명한 관교(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문서는 1873년(同治 12년) 윤 6월에 고종(高宗)이 신응조(申應朝)를 겸 지의금부사(兼 知義禁府事)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신응조(申應朝, 1804~1899)는 자는 유안(幼安) 호는 계전(桂田)ㆍ구암(苟菴)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852년(철종 3) 문과(文科)에 급제해서 검열(檢閱)ㆍ이조 정랑(吏曹正郞)ㆍ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했다, 1866년(고종 3) 이조 참판ㆍ대사헌, 1871년 강원도 관찰사, 1873년 형조ㆍ이조의 판서, 이듬해 예조 판서가 되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 집권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뒤에 좌의정에 올라 봉조하(奉朝賀)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는 의금부의 정2품 관직이다. 판의금부사보다는 낮지만, 동지의금부사보다는 높다. 주로 판서급 인사들이 지의금부사를 많이 겸임했다. 그리고 또한 우참찬이나 좌참찬이 지의금부사를 많이 겸임하기도 했다.
A009_01_A00402_001_003
이조 서리(吏曹 書吏) 오명환(吳命煥)이 작성한 문서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