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364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8년 신응조 관교 / 申應朝 官敎
- ㆍ발급자
-
고종(高宗)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응조(申應朝, 1804~1899)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8년 10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同治七年十月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3.7 × 73.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8년(同治 7년) 10월에 고종(高宗)이 신응조(申應朝)를 겸 홍문관 제학(兼 弘文館 提學)으로 임명한 관교(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문서는 1868년(同治 7년) 10월에 고종(高宗)이 신응조(申應朝)를 겸 홍문관 제학(兼 弘文館 提學)으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신응조(申應朝 1804~ 1899)는 자는 유안(幼安) 호는 계전(桂田)ㆍ구암(苟菴)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852년(철종 3) 문과(文科)에 급제해서 검열(檢閱)ㆍ이조 정랑(吏曹正郞)ㆍ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했다, 1866년(고종 3) 이조 참판ㆍ대사헌, 1871년 강원도 관찰사, 1873년 형조ㆍ이조의 판서, 이듬해 예조 판서가 되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 집권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뒤에 좌의정에 올라 봉조하(奉朝賀)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홍문관(弘文館)은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經書)·사적(史籍)의 관리와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사헌부 · 사간원과 더불어 삼사(三司)라 하였다.
제학(提學)은 조선시대 예문관·집현전·홍문관·규장각 등의 종2품 관직이다. 규장각에는 종1품관이나 정1품관도 임명될 수 있었는데 정1품관이 임명될 경우엔 대제학(大提學)이라 하였다.
A009_01_A00364_001_003
이조 서리(吏曹 書吏) 오명환(吳命煥)이 작성한 문서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