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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361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8년 신응조 관교 / 申應朝 官敎
- ㆍ발급자
-
고종(高宗)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응조(申應朝)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8년 윤4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同治七年閏四月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5.3 × 74.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8년(同治 7년) 윤4월에 고종(高宗)이 신응조(申應朝)를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嘉善大夫 司憲府 大司憲)으로 임명한 관교(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문서는 1868년(同治 7년) 윤4월에 고종(高宗)이 신응조(申應朝)를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嘉善大夫 司憲府 大司憲)으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신응조(申應朝 1804~ 1899)는 자는 유안(幼安) 호는 계전(桂田)ㆍ구암(苟菴)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852년(철종 3) 문과(文科)에 급제해서 검열(檢閱)ㆍ이조 정랑(吏曹正郞)ㆍ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했다, 1866년(고종 3) 이조 참판ㆍ대사헌, 1871년 강원도 관찰사, 1873년 형조ㆍ이조의 판서, 이듬해 예조 판서가 되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 집권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뒤에 좌의정에 올라 봉조하(奉朝賀)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조선시대 종이품(從二品)의 문관과 무관에게 주던 품계이다. 종이품의 하계(下階)로서 가정대부(嘉靖大夫)·가의대부(嘉義大夫)보다 아래 자리이다. 사헌부(司憲府)는 조선시대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으로, 중앙과 지방의 행정을 감찰 고발하고, 국왕에 대해서도 언제나 극간(極諫)하는 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았다. 대사헌(大司憲)은 도헌(都憲) 또는 대헌(大憲)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관직으로 중앙과 지방행정의 감찰과 고발을 담당하는 사헌부의 수장이다. 종이품(從二品)이며, 정원은 1원이다.
A009_01_A00361_001_003
이조 서리(吏曹 書吏) 오명환(吳命煥)이 작성한 문서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