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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346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2년 신응조 관교 / 申應朝 官敎
- ㆍ발급자
-
철종(哲宗)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응조(申應朝, 1804~1899)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2년 12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同治元年十二月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4.3 × 75.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철종(哲宗) 13년(1862)에 신응조(申應朝)를 겸 남양진 병마첨절제사 좌영장 총융청 전 영장토포사(兼 南陽鎭 兵馬僉節制使 左營將 摠戎廳 前 營將討捕使)로 임명한 관교(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문서는 1862년(同治 원년) 12월에 철종(哲宗)이 신응조(申應朝)를 겸 남양진 병마첨절제사 좌영장 총융청 전 영장토포사(兼 南陽鎭 兵馬僉節制使 左營將 摠戎廳 前 營將討捕使)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신응조(申應朝 1804~ 1899)는 자는 유안(幼安) 호는 계전(桂田)ㆍ구암(苟菴)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852년(철종 3) 문과(文科)에 급제해서 검열(檢閱)ㆍ이조 정랑(吏曹正郞)ㆍ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했다, 1866년(고종 3) 이조 참판ㆍ대사헌, 1871년 강원도 관찰사, 1873년 형조ㆍ이조의 판서, 이듬해 예조 판서가 되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 집권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뒤에 좌의정에 올라 봉조하(奉朝賀)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남양진(南陽鎭)은 조선시대 경기도 남양 지역에 설치한 지방 방위 조직인 진관이다. 세조 때 지방 군제를 진관(鎭管)체제로 개편하면서 수원진에 소속되었다.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는 조선 시대 병마절도사에 속한 종삼품 무관 벼슬이다. 각 도(道)의 거진(巨鎭)에 두었는데, 목(牧)ㆍ부(府)의 소재지에서는 수령이 겸임하였다. 영장은 진영장(鎭營將)이라고도 한다. 각 도의 감영(監營)·병영(兵營)에 속한 지방군을 통솔하였다. 각 도의 진영은 전·후·좌·우·중의 5영으로 하고, 필요시엔 별영(別營)을 더 두었다. 총융청(摠戎廳)은 조선 후기 서울과 경기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군으로 오군영의 하나이다. 토포사(營將討捕使)는 각 진영에서 도둑 잡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 처음에는 수령이, 후에는 진영장이 겸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