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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125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신응조 간찰 / 申應朝 簡札
- ㆍ발급자
-
신응조(申應朝, 1804~189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손자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4.3 × 39.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신응조(申應朝, 1804–1899)가 불안한 민심과 도적 소문이 무르익는 시기에 손자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는 자신과 집안이 별탈 없이 평안하다는 사실을 먼저 전하며, 외부의 소요에 대한 풍문이 심각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별다른 변화가 없으니 섣불리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처신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밖에 염치없는 두영과 실증나는 任佐郞의 妻姪 및 세상을 모르는 요즘 세태를 언급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간찰은 신응조(申應朝, 1804–1899)가 불안한 민심과 도적 소문이 무르익는 시기에 손자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는 자신과 집안이 별탈 없이 평안하다는 사실을 먼저 전하며, 외부의 소요에 대한 풍문이 심각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별다른 변화가 없으니 섣불리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처신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어 ‘두영(斗永)’이라는 인물이 염치를 저버리고 관청에 머무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그가 붙인 격문은 길거리의 선동자들과 다를 바 없다며 통렬히 질타하였다. 아울러 30리 거리의 연산 출행에서 하인을 대동하거나 과도한 식비를 청구하는 세태를 지적하며, 요즘 사람들의 판단력 결여와 사회적 해이를 개탄하였다. 나아가 문안차 방문한 친척의 방문조차 번거롭게 느낄 만큼, 외부 접촉에 대한 경계를 드러내었다.
이 편지는 위정자로서의 도덕적 긴장감, 풍속의 변질에 대한 선비적 경계, 그리고 시대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격문과 선동에 대한 단호한 비판은, 어지러운 시기일수록 중심을 잃지 않고 사회를 안정시키려는 유학자의 책임 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일상적인 거리 이동에조차 사치와 허례가 스며든 현실을 통렬하게 지적함으로써, 고관으로서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지키려는 선비로서의 일관된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간찰은 단순한 안부 서신을 넘어, 혼란기에도 도덕과 질서를 지키려는 지식인의 태도와 시대 인식을 생생히 전하는 귀중한 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원문
連山政軒回納
本第平信
卽得手書 審知依前 可喜
吾一安 家中亦然耳 聞亂
類掛書山南路傍 而姑未有
作變處 吾家之能免來
劫未可知 而亦不足動心耳
斗永之冒沒廉恥 投足官
舍 令人駭歎 此其所見 卽是
掛榜者之同類 極可寒心也
此去連山三十里 而三十里路資
一兩 討出於凡秀 雖不能得
錢而去 三十里食價 何至一兩
且見帶得一樵童而去 雇奴/
並來 此皆沒覺鄕人之見也 山厥貌樣
必欲呈身官府 其全沒知覺 如此耳
任佐郞之妻姪 又方來留此中 令人
可厭可苦耳 餘不宣 卽日 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