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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121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6년 신경한 간찰 / 申景翰 簡札
- ㆍ발급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6년 8월 1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갑술 8월 11일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5.9 × 39.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갑술년(1754) 8월 11일에 신경한(申景翰, 1719~1770)이 부친에게 올린 편지이다. 편지의 핵심 내용은 묘제(墓祭) 이후의 근황과 자식의 건강, 일상적인 걱정과 주변 소문에 대한 판단 등을 담고 있다. 이외에 牛價錢과 都政에 대한 내용을 전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간찰은 갑술년(1754) 8월 11일에 신경한(申景翰, 1719~1770)이 부친에게 올린 편지이다. 편지의 핵심 내용은 묘제(墓祭) 이후의 근황과 자식의 건강, 일상적인 걱정과 주변 소문에 대한 판단 등을 담고 있다. 먼저 발신자는 최근 편지를 잘 받아 보았으며, 기후와 건강이 어떠한지를 다시 묻고 안부를 전하였다. 자신은 별탈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와 잠자리가 편안함을 전하였다. 이어 묘제를 수행하고 온 하인[墓奴]이 8월 7일 도착했으며, 제사 용품을 모시러 가느라 이틀 뒤에야 돌아갔다고 하였다. 또한 아들인 윤겸(允謙)이 발을 다쳐 아직 출발하지 못했음을 전하였다.도정(都政)이라는 말은 도목정사(都目政事)의 준말로, 8월 8일에 예정대로 이를 수행했다고 전하고, 사전에 준비나 점검이 없었던 일을 아쉬워하며 세상일이란 대개 그런 식이라며 체념에 가까운 유감을 드러냈다. 이어, 백미(伯美)라는 사람이 찾아와 어떤 말을 전했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 믿을 수 없어 의심스럽다고 하며, 세간의 소문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통판(通判) 흥지(興之)가 대구(大丘)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번 배불리 먹는 것도 운수가 있다는 것이 과연 헛된 말은 아닌 듯하다고 평하였다. 이는 아마도 지방 관직의 고달픈 실정을 지적하는 것으로, 현실에 대한 이해와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말미에는 소 관련 비용과 제사 비용의 정산을 위해 다시 돈을 보내주기를 요청하면서, 간략하게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선비의 가족 제사 이후의 일상 관리, 자식의 건강, 세간의 소문을 분별하는 신중함, 그리고 지방 행정의 실태에 대한 견해를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문서로, 개인의 삶과 사회 현실을 함께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원문
日前
下書 伏慰萬萬 日來
氣體更若何 伏慕區區 子 侍奉
眠食姑安 伏幸 墓奴初七日來
現 其翼因奉
祭需而歸 允謙偶爾傷足 尙未發
去耳 都政八日果爲之 而初無
檢擬之事 世間事 固多如此 雖歎
柰何 昨日伯美來見 有所云云 而恐
非誠實底語 亦何足信也 興之之
通判大丘 亦自緯繣 一飽食有數
者 果非虛語 而牛價錢及都政上/
送 都政則下覽後 還爲/
下送 伏望 餘不備 伏惟
下鑒 上書
甲戌八月十一日 子 景翰 上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