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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120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6년 신경한 간찰 / 申景翰 簡札
- ㆍ발급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병자 윤월 5일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7 × 45.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안부를 여쭈고 문흥에 도착한 후 돌아가는 방법이 어려운 상황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음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간찰은 병자년(1756) 윤9월 5일 오후 무렵에 신경한(申景翰, 1719~1770)이 부친에게 올린 편지이다. 스승의 부음(訃音)을 접하고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진 가운데 조문을 위한 방안을 고민하며, 이를 부친에게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발신자는 날씨와 건강을 여쭙는 인사에 이어, 이날 정오 무렵 도착한 부음 소식[驪上赴書]에 깊은 충격을 받았음을 전한다. “斯文與世道 自此將無所依靠矣”라는 표현은 스승의 타계로 인해 문명(文命)과 세도(世道)가 무너진 듯한 상실감을 보여주는 문장으로, 전통적인 유학자의 사상적 기반과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발신자는 곧장 홍숙 등 지인들과 함께 조문[赴哭]하려 했지만, 말과 하인이 없어 실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토로하며, 그 심정을 “尤不勝痛哭痛哭”이라 하여 통곡할 수밖에 없는 절절한 감정을 묘사하면서, 부음은 들었으나 장례에 바로 달려가지 못하고, 상복만 입은 채 며칠 머무르다 출발하려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어 서울에서 말을 차용할 경우 비용이 무려 3관(貫) 동전에 달할 정도로 부담되므로, 마을에서 기르는 말을 단기 차용할 수 있을지 여쭙고 있다. 이 말은 평소에도 장작이나 곡식을 실을 때 소 대신 이용해 온 말이라 하여 현실성을 강조하였다. 차용할 수 있다면 사흘에서 닷새 정도면 된다고 하였다. 말미에는, 당면한 과거 시험 응시[赴擧]와 조문 문제를 함께 언급하면서, 지금 시점에서는 시험을 논의하는 자체가 무의미하고, 조문 없이 시험장에 나가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유학자의 정념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스승과 제자의 의리는 중하니, 힘이 없음을 핑계로 삼고, 수십 일 내내 울지도 않고 시험에 나서는 것은 인의가 아니다.”라며, 도의적 실천의 고민과 갈등을 절절히 표출하였다. 다시 말미에 첨부된 후속 내용으로, 윤시동(尹蓍東)의 계사직문[啓辭]의 초안이 이미 필사본으로 존재하므로 함께 보낸다는 부수적 기록과 함께, 말을 빌릴 수만 있다면 조문 후 곧장 우만(牛灣)으로 향하겠다는 후속 계획도 언급하였다.
이 간찰은 한 개인이 스승의 죽음을 맞아 슬픔과 도의 사이에서 갈등하며, 그 속에서 실천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는 진실한 유학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서로, 조선 후기 선비의 윤리의식과 생활상, 그리고 지역사회 내 인적 자원의 활용 방식까지 엿볼 수 있는 기록적 가치가 크다.
원문
日間
氣候 諸節若何 伏慕區區 無任下忱
驪上赴書 今日午時來到 斯文與世道
自此將無所依靠矣 俯仰慟隕 倍切
安仰之痛 此何理耶 卽欲與洪叔諸人
幷轡赴哭 少伸半生師事之誠 而無
奴無馬 亦莫之遂 尤不勝痛哭痛哭 伏想
聞此 無以爲懷 坐此窘乏聞訃日 雖未卽赴
成服 後卽欲發去 而自京貰馬 則其價似不下
三貫銅矣 曾聞□喂牛者 有馬每於載
柴 或運穀時 必以渠馬代牛往來矣 或可
四五日借騎否 試此
下旬伏望 赴擧一節 實非今日可議者 而若
不得已而觀光 則尤不可不於科前 一往伸
悲 蓋師生義重 而諉於無力 致身數十日
之內 終未往哭 揚揚赴擧 則是豈人情哉 伏
思往赴之策 而實無發策拮据之道 故敢提村人
喂牛者以告 而亦恐未易成 伏慮伏慮
長者之喪 異於年少 無聞之人 委此走伻
姑不備 伏惟
下鑒上書
丙子閏月初五日 晡時 子 景翰 上書
尹臺蓍東啓辭 曾有謄置者 故幷此胎納 全
民履鉉上書 亦爲上送耳
若得喂牛者之馬 則當進拜膝下 仍欲轉向
牛灣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