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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101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49년 신경한 간찰 / 申景翰 簡札
- ㆍ발급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49년 10월 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父主前上書 (己巳十月) 十月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9.8 × 26.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이 부친에게 기사년(1749) 음력 10월 2일에 보내온 편지로, 조상 제사를 위한 묘지(墓誌)의 문안과 지문(誌文)의 소성과정을 상세히 보고한 내용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간찰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이 부친에게 기사년(1749) 음력 10월 2일에 보내온 편지로, 조상 제사를 위한 묘지(墓誌)의 문안과 지문의 소성과정을 상세히 보고한 내용이다. 발신자는 먼저 부친의 최근 여정에 별탈이 없었는지를 묻고, 조부의 제사일이 지난 밤이었으므로 부친의 슬픔이 더 깊어졌을 것을 짐작하며 위로의 뜻을 전하였다. 이어지는 내용은 조부의 묘지문(誌文)을 재작업하여 요소(窯所, 소성 작업을 맡는 곳)에 보냈으나, 문제의 발생을 설명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요소에서는 이 지문이 귀가(貴家) 즉, 신씨 집안에서 의뢰한 것이 아닌 다른 집안의 것으로 오인하였고, 요소의 주인에게 여러 차례 설명했음에도 일부 지판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 결과로 세 번째 판본의 마지막 세 판 가운데 두 판은 소성되지 못하고, 이미 소성된 두 번째 판본 상단의 두 판은 완전히 버려지게 되어 앞서의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되었고, 나아가 지문을 구성하는 판의 수량이 부족해질까 염려된다고 밝히고 있다.더불어 지시에 딸 자손을 추가하면, 구운 2개 판도 모두 버려야해서, 앞서 구운 판이 아깝기도 하고 앞으로 판이 모자랄 것을 걱정하였다.
이 편지는 당시 사대부가에서 묘지문을 인쇄(목판 또는 토판에 글자를 새겨 소성함)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지문의 정본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단순한 문서 작성에 그치지 않고 출력(燔印), 구성의 정합성, 요소와의 협조 등 다양한 기술적·실무적 조율을 필요로 했음을 알려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발생한 오해와 손실이 유가족에게 얼마나 깊은 유감을 주었는지를 절절하게 담아내고 있어, 유교 사회에서 예(禮)와 추모의식이 얼마나 중시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원문
父主前上書 子 (己巳十月) [手決] [謹封]
奴回 伏承
下書 伏審行次 無撓稅駕 伏
幸伏幸 宵回
氣力更若何
祖考諱辰隔宵 伏想
罔極之慟 益復難抑也
祖考誌文 再昨盡書 送于窰所
卽戶主諸漢 皆以爲昨日他兩班入
來 此必他誌文 決非貴宅所燔者/
而憑籍於貴宅誌文 不給告事
等諸價 非吾輩所知 終不入窰/
竈 使主人 反覆曉諭 至
昏艱入三片 二片終不受之
可痛可痛 奈何奈何 燔出者
乃末三板 未燔
出者 是上二板
今依下敎 添
入子孫 錄於吾姨
從也之下 則燔出
二板 盡棄之 非但
前功可惜 恐有
誌板不足之患 伏
悶伏悶 餘可奴歸
便 不備上書
十月二日 子 景翰 上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