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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81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2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2년 12월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 臘 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9.4 × 24.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임○년(임신 1752) 12월 19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임○년(임신 1752) 12월 19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우측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는데 수신자 정보로 “竹西本家卽傳”, 발급자 정보로 “沙庄平書”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수신자는 ‘죽서’의 본가에 있는 발급자의 아들이고, 발급자는 당시 ‘사장[沙村]’이라는 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본 간첩의 여타 간찰을 통해 둘째 아들 신경악이 1751년 경에는 이미 사망한 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신자는 신경한으로 볼 수 있다.
두 명의 하인이 번갈아 연일 나와서 오는 편마다 편지를 받으니 매우 위로된다고 하였다. 다만 거처하는 곳에서 나와 사랑(舍廊)에 들어가 있다고 하니 무슨 연고로 갑자기 나왔냐고 물었다. 구들이 차서 견디기 어려운데 이러한 극심한 추위에 병이라도 날까 심히 걱정된다고 했다. 임금의 대가(大駕)가 이미 환궁(還宮)하였고, 이어서 대신(大臣)과 여러 재상들을 투비(投畀)하라는 명을 거두었다고 들었으니 신민들이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뒤끝에 매우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밤중에 벽을 안고 탄식 할 뿐이라고 했다. 자신은 이전대로 지내고 있고, 조고(祖考)의 휘신(諱辰)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내일 들어갈 것이므로 하인 복(卜)이가 가는 편을 통해 우선 이를 알린다고 하였다. 상대가 거처하는 방은 따뜻하지 않을 수 없으니 부채가 더욱 불어나더라도 날마다 반드시 땔나무 서너 묶음씩 때우라고 당부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발급자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근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竹西本家卽傳 沙庄平書 緘 [手決] 【壬臘十九】
兩奴連日出來 來輒得書 極以爲慰 第出處舍廊云 何故遽出耶 堗寒難堪 當此極寒 恐有添病之端 深以爲慮 大駕聞已還宮 仍收大臣諸宰投畀之命 臣民焦遑之餘 慶幸莫大 而此後又不知有何許過擧 中夜繞壁 憂歎●(無)曷已 吾如昨 爲參祖考諱辰 明將入去 憑卜奴去 先此通報耳 汝之所處之室 不可不溫暖 雖債上負債 日必燃數束薪 至可至可 只此 壬 臘 十九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