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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78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3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33년 4월 2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8.3 × 34.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계축년(1733) 4월 27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계축년(1733) 4월 27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좌측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고 “寄必兒”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동 간첩 내 여타 간찰 중 발급자의 두 아들을 ‘필대’, ‘觀大’로 적은 건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로서 미루어 보면 ‘必兒’는 ‘必大’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필대는 신야의 장자 신경한(申景翰, 1719~1770), 관대는 차자 신경악(申景岳, 1725~?)의 아명(兒名) 또는 이명으로 추정되므로 이 간찰의 수신자는 ‘신경한’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상대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애가 탄다고 하면서, 오늘 달려가 볼 길이 없어 걱정되는 마음 끝이 없는데, 그간 여러 증세는 다시 어떠한지, 땀을 뺀 뒤 점차 나아지고 있는지 묻고는 더욱 잘 조섭하여 얼른 낫길 바란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잘 지내고 있고, 다음달 2일에 이곳에서 길을 나서면 6일에 돌아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황지 화간(黃紙畵簡) 크고 작은 것 아울러 40폭(幅), 붓 2자루, 먹 1개를 보내니 병중에 가지고 놀 것이 될 만하고, 민강(閩薑) 1봉(封)도 보내니 병으로 없는 입맛을 열어줄 것이라고 했다. 전에 부탁한 『논어』 3권과 4권은 자신이 가지고 왔으니 다음에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발급자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근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寄必兒
自聞汝病 此心焦灼 固不可言 而無緣卽日馳見 憂念之懷 何可極 日來諸症 更如何 發汗之後 日有所勝否 唯望益加善攝 速臻夬瘳 吾 侍奉好遣 初二日自此發行 初六日可以歸見耳 黃紙畵簡大小幷四十幅 二筆 一墨送之 可作病裡遊玩之資 閩薑一封亦送之 可開病口也 前示論語第三四卷 吾果持來 從當賫去也 只此 癸丑 四月 卄七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