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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77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2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2년 6월 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申 六月 朔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9.7 × 25.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임신년(1752) 6월 1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임신년(1752) 6월 1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우측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는데 수신자 정보로 “大寺洞本家卽專”, 발급자 정보로 “衙中平書”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수신자는 ‘대사동’ 본가에 있는 발급자의 아들이고, 발급자의 경우 『승정원일기』 <1753(영조 29) 7월 23일(병자)> 기사를 참조하면 그는 ‘신미년(1751)’에 용인현령에 재직 중이었음이 확인 되므로 그 다음해인 임신년 역시 용인현 관아에 부임해 있었기 때문에 ‘衙中’으로 적었을 것이다. 또한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본 간첩의 여타 간찰을 통해 둘째 아들 신경악이 1751년 경에는 이미 사망한 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신자는 신경한으로 볼 수 있다.
본론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틀 전, 3일 전에 연달아 보낸 편지에 대해 오늘에야 답장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리라 여기지만, 며칠간 편지가 오지 않으니 매우 답답하다고 했다. 날씨가 그야말로 더워지고 오늘은 또 초복(初伏)이어서 넓은 집 안에 고고하게 누워있는 것도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데, 종일 땡볕 아래에서 어떻게 일을 보고 있는지 묻고 매우 염려된다고 했다. 자신의 견통(肩痛)은 점차 괜찮아지고 있고, 상대 어미(자신의 아내)의 병도 사뭇 덜해졌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신번(新番) 사령으로 교체되어 구번(舊番) 사령이 올라가는 편에 이 편지를 부친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발급자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근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大寺洞本家卽傳 衙中平書 六月初一日 緘 [手決] 【壬申六月初一】
寄兒 再昨三昨連有書 今日則似可見答 而數日阻書 殊可鬱也 天時正熱 今日又是初伏 廣廈高臥 猶難堪耐 終日●(暴)烈陽 何以看役 憂念萬端 吾之肩痛 漸向安勝 汝慈所患 自昨亦頗減歇 須勿過慮也 新番使令 替番上去 略此寄音 只此 壬申 六月 朔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