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75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3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3년 9월 2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酉 九月 卄四 曉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0.8 × 31.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계유년(1753) 9월 24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계유년(1753) 9월 24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는데, 이 간찰의 두사로 쓰인 “答兒”와 본문 내용의 말미 부분, 발급 연월일 및 발급자 기록인 “領納渠所買之柴耳 只此 癸酉 九月 卄四 曉 父”까지는 배면에 기록되어 있다.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고 자봉(自封)으로 추측된다. 또한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본 간첩의 여타 간찰을 통해 둘째 아들 신경악이 1751년 경에는 이미 사망한 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신자는 신경한으로 볼 수 있다.
여강(呂江) 행차를 떠나기 전에 연일 편지를 받았고, 돌아와서는 20일자 편지를 또 나보다 먼저 보내 온 것이 있기에 급히 뜯어보고 잘 지낸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자신은 여주(驪州)와 이천(利川)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기를 열흘정도 하고 돌아왔는데, 무탈하니 다행이라고 했다. 이천에 있을 때 타고 다니던 말이 갑자기 다리를 절어 마의(馬醫)를 불러다 두 다리의 피고름을 짜내어 4,5일 안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고 하여 가는 길마다 말을 빌려 타고 21일 밤에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또 하인 순(順)이를 시켜 말을 가지고 가서 전하게 하고, 우리 집 말의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가 25,6일 사이에 말을 끌고 돌아가게 했는데, 그간 말이 나 나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돌아오면 즉시 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안음(安陰) 측 편지는 그간에 받은 것이 있냐고 묻고, 섬촌(蟾村)에 있을 적에 사수(士修)가 영춘(永春)에서 돌아 온 편을 통해 그쪽에서 시아비 뵙는 예를 잘 마쳤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고 했다. 경중(敬仲)과 자신은 결국 만나지 못했고, 그는 아마 지금이면 여강으로 갔을 것이라고 했다. 조 김포(趙金浦)의 상은 여강에 있을 때 이미 들었는데, 아들 셋이 회시(會試)를 보지 못한 것이 이번에 이미 두 차례가 되었고, 이미 집으로 돌아왔는지 물었다. 상대는 처가에 머물면서 춘당대시(春塘臺試)를 볼 것이냐고도 물었다. 빈마(牝馬)도 안장 때문에 상처가 나서 간신히 농우(農牛) 두 마리를 얻어 하인 복(卜)이를 시켜 그가 산 땔나무를 받아들이게 했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발급자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근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答兒
呂行未發前 連日見書 及歸卄日書 又先我來留矣 忙手開緘 知連得安遣 喜不可言 吾迤邐驪利間 滿旬而返 身上無恙 可幸 但在利時 所騎猝蹇 邀馬醫 斷兩脚血 四五日內不可作行云 故轉轉借馬 卄一侵夜還此 翌曉又使順奴 持馬往傳 待家鬣病歇 卄五六兩日間 必令牽歸 而未知其間 能得差可否也 歸則卽當入去矣 安陰書信 其間得聞否 在蟾之日 士修自永春歸傳見舅之禮吉成 可幸 敬仲與吾 竟作燕鴻之歎 可悵 想今已往呂矣 趙金浦之喪 在呂已聞之 慘不忍言 子三之坐停會圍 今已兩次矣 痛嘅痛嘅 然則已還鄕否 汝渭陽當留觀春臺否 未知可鬱 牝馬亦傷於●(馬)鞍 艱得兩村牛 使卜奴領納渠所買之柴耳 只此 癸酉 九月 卄四 曉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