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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9_01_A00074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1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1년 5월 3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辛未 閏月 晦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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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3 × 33.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신미년(1751) 윤5월 30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신미년(1751) 윤5월 30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우측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는데 수신자 정보로 “大寺洞本家卽專”, 발급자 정보로 “龍衙平書”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수신자는 ‘대사동’ 본가에 있는 발급자의 아들이고, 발급자는 당시 용인현 관아에 부임해 있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 <1753(영조 29) 7월 23일(병자)> 기사를 참조하면 그는 ‘신미년’에 용인현령에 재직 중이었음이 확인된다. 또한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본 간첩의 여타 간찰을 통해 둘째 아들 신경악이 1751년 경에는 이미 사망한 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신자는 신경한으로 볼 수 있다.
관노가 돌아오는 편으로 편지를 받고 무사히 도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비가 또 심하게 내리니 심란하게 한다고 하면서, 그간 안부는 어떤지 물었다. 자신은 이전대로 지내고 있지만, 안생(安生)이 내일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기에 서운하다고 했다. 삭전(朔奠)에 쓸 각종 제수(祭需)를 보내니 물목을 잘 살펴 안사람에게 들여보내라고 했다. 의금부의 노비 징공(徵貢) 문제로 매우 고민된다고 하면서, 민질(閔姪)에게 편지를 써서 해결하고자 경저인에게 전하게 하고 답장을 받아 보내라고 했는데, 잘 힘을 써 줄지 모르겠다고 했다. 장씨와 김씨 두 놈에게 받을 물건은 기한 내로 와서 바쳤냐고 물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발급자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근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제목 없음
大寺洞本家卽專 龍衙平書 閏月晦 ■(完) 緘 【辛未閏月】
答兒 官隸回 見書 知無事入城 可喜 雨又作極 令人心亂 日間安否如何 此中如昨 安生明將歸去 可悵 朔奠所用各種送之 照單入送于內間 可也 以禁府奴婢徵貢事 極爲悶苦 作書於閔姪 起之使邸人傳致 受答以送 未知果能用力夬施否也 張金兩漢所捧之物 果不失期來納否 千萬艱草 只此 辛未 閏月 晦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