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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9_01_A00072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42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42년 12월 2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 臘月 卄四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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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3.5 × 45.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임술년(1742) 12월 24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임술년(1742) 12월 24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外弟服人’으로 표현하여 내외종간이면서 자신은 복상(服喪) 중임을 나타내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잠시의 이별도 암담함을 느끼는데 저승으로 영결하는 것은 애통함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요즘 혹독한 추위에 상 때문에 병든 몸으로 분주히 다니는 뒤끝에 건강에 손상은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이번 행차에서 몇 군데의 산지를 볼 수 있었고, 어느 곳으로 정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자신은 즉시 안부를 여쭈러 가고 싶었지만 근래에 병과 피로가 심하고 추위가 두려워 가지 못하고 아들이 가는 편을 통해 대신 안부를 드린다고 하면서, 세후(歲後)에 찾아가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상주노릇 하는 조카의 건강이 시들시들한 것은 요즘 어떠한지, 젖먹이 아이의 병이 가볍지 않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지 등을 물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와 수신자 간의 당시 근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제목 없음
兄主前再拜上候狀 生人乍別 猶覺黯然 九京之訣 哀可知也 比日●(極)寒酷 奔走悲疚●(往來)之餘 體中不瑕有損 區區仰慮 ●●●●(不敢少弛)日夕靡懈 今番之行 看得幾許山 而果以何處爲定耶 弟 卽欲出拜承候 而近甚病憊 且畏寒 不敢出頭 因兒行畧此替申 歲後當●●●(往拜也)委進拜候也 棘姪澌敗 近復如何 聞其乳兒之病極不輕 ●(今)或已●(差)向安否 種種憂念不自勝 餘悤悤不備 伏惟下察 再拜上候狀 壬戌 臘月 卄四日 外弟服人 申埜 省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