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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68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47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여우(汝愚)라는 자를 쓰는 미상의 인물
- ㆍ발급시기
-
1747년 10월 2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卯 十月 卄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8.8 × 25.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정묘년(1747) 10월 25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정묘년(1747) 10월 25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汝愚”라는 자를 썼고, 스스로도 “文之”라는 자로 표현하여 평교간임을 알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배접된 배면에 “汝愚 案下”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되므로 자봉(自封)으로 보이고, 수신자 여우(汝愚)는 미상이다. 문지(文之)는 신야의 자이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다.
일간에 집안 상황이 어떠한지 묻고, 이별한 회포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자신은 23일에 섬촌(蟾村)에서 돌아와 24일에 다시 크게 아픈데, 증세가 상대의 집에 있을 때와 같아서 밤새도록 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조금 나았지만, 내일 한천(寒泉)으로 갈 일은 기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대로 머무르고 며칠간 조섭하다가 곧바로 서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순지(順之)와 동행을 약속하였기에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할 뿐이라고 했다. 배편으로 가는 인편이 지나가기에 대략 몇 글자 써서 부치지만 눈이 어둡고 기운이 약해 대충 쓰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고 했다. 성빈(聖賓)과 함께 이 편지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발급자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근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汝愚 案下
日間 閤況如何 別懷不須言 此身卄三自蟾村還 卄四又復大痛 症勢一如在君家時 達夜苦劇 朝來少勝 而明日寒泉之行 恐未可必 欲留調數日 直返京第 而旣與順之約同行 赼趄未決耳 聞泛濫者歷過 畧以數字寄音 而昏眩氣短 草草不盡 與聖賓同照此紙 可也 只此 丁卯 十月 卄五日 文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