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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67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신야의 아들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7.3 × 1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미상년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내용이 간략하고 발급 연월일이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긴급하고 간단히 알려야 할 사항만 적어 보낸 일종의 적바람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오늘은 날씨가 매우 찌는 듯이 더운데 집안의 제절은 어떠하냐고 묻고, 어미의 편찮은 데는 오늘 과연 통증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확실히 학질 증세일 듯하니 염려를 놓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잘 지낸다고 했다. 벽장에 있는 당판(唐板)으로 된 『초사(楚辭)』 책갑에서 초권(初卷)을 꺼내 이 하인 편에 부쳐 보내달라고 하고, 관대가 『대학』을 베껴주기를 요청하였으니 벽장에서 만일 이 책이 없다면 필시 누각에 있을 것이기에 열쇠를 보낸다고 하였다. 상대도 공책을 얻고자 하였으므로 이제 막 종이를 도침(搗砧)하여 3권을 만들어 보낸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당시 자녀의 과시 관련 학습과 관련하여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寄兒 今日則日氣甚蒸熱 閤中諸節 如何 汝慈所患 今日果不作痛 而明是痁症否 爲慮不置 吾安遣耳 壁藏中唐板楚辭匣 出其初卷 ●付此伻以送 如何 觀也請謄學耳 壁藏如無此冊 則必在樓上 當送鑰匙也 汝亦欲得空冊 故方搗紙 當作三卷以送也 不一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