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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65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아(兒)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0월 2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十月 卄七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7.6 × 12.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 10월 27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미상년 10월 27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우측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는데 “寄兒”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또한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야간에 안부는 어떠한지 묻고, 자신은 이전대로 지낸다고 했다. 어제 늦은 시간에 윤겸(允傔)이 여주(呂州)에서 돌아와 섬촌(蟾村) 편지를 전해주어 열어보고, 태지(胎紙)를 보내온 두 곳의 답장을 보냈으니 이를 받은 즉시 나누어 전달 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윤겸이 들어가는 편에 이 소식을 부친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와 주변의 당시 근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寄兒 緘
夜間 閤況如何 馳念馳念 吾如昨 昨晩允傔 自呂歸傳蟾村書 坼見而送之胎來兩處 去書卽爲分傳 可也 憑允傔入去 又此寄音 十月 卄七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