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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59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49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 答翰兒추정:
- ㆍ발급시기
-
1749년 10월 1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己巳 十月 十七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9 × 27.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기사년(1749) 10월 17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기사년(1749) 10월 17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우측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는데 “答翰兒”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수신자는 신야의 아들인 신경한(申景翰, 1719~1770)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립던 중에 14일자 편지를 받고 편안하다는 점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또 듣기에 읽고 있는 서책이 20일 뒤에 끝날 것이라고 하니 어찌 그리도 신속하냐고 하면서 근면한 공효가 이과 같으니 더욱 기쁘다고 했다. 편독(遍讀) 횟수는 몇 회독으로 잡고 있는지 물었다. 다만 읽을 때 외는 것만 일삼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자신은 이전대로 지내고 있고, 추위가 점차 닥치는 것이 고민된다고 했다. 군회(君會)와 송아(宋兒)의 상(喪)은 참혹한데, 위문하고자 해도 글을 쓰기도 전달하기도 어렵다고 하면서, 상대가 틈이 날 때 함장(凾丈)께 여쭈어 위장(慰狀)을 써서 부치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이나 자식의 학업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答翰兒 【己巳十月十七】 緘
戀中得十四書 知安 可喜 又聞所讀之書 似於念後卽了●(當) 何其神速耶 勤勉之效●●(可知)若是 尤可喜也 遍數以幾讀爲限耶 不但讀之以成誦爲務 可也 此中如昨 寒事漸至 以是爲悶耳 君會之喪 宋兒之喪 慘不忍言 時偕處欲慰問 而難寫難傳 汝於暇時 稟于函丈而書之 亦有付送之道否 餘來人臨發立促 不能一一 己巳 十月 十七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