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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57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49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申埜의 아들
- ㆍ발급시기
-
1749년 1월 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己巳 正月 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0.8 × 3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기사년(1749) 1월 2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기사년(1749) 1월 2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우측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는데 수신자 정보로 “校洞本宅卽納”, 발급자 정보로 “水井行中平書”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수신자는 ‘교동’의 본가에 있는 발급자의 아들이고, 발급자는 당시 ‘수정’이라는 곳으로 출타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교동은 여주 소재지, 수정은 이천 소재지로 추정되며, 본문에서 언급된 번천(樊川)은 경기도 광주(廣州) 소재지로 추정된다. 또한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신년에 어미 모시며 기쁘고 경사로운 복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하고, 자신은 우환에서 벗어나 선영에 와 있는데, 방사(房舍)가 정갈하고 따뜻하여 생각이 여유로워진다고 했다. 하지만 절사(節祀)를 행함에 돌아가신 어버이 생각에 슬프다고 했다. 하인 복(卜)이에게 번천(樊川)으로 가서 땔나무를 실어 들어가게 한 뒤에 하루 간격으로 연이어 보내고, 땔나무도 재차 열흘 상간에 다시 내려보내고 나면 보름이나 기망(旣望, 16일) 쯤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당시 발급자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근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校洞本宅卽納 水井行中平書 正月二日出 ■(完) 【己巳】
新年侍奉 茂受歡慶 吾擺脫憂患 ●(歸)來臥松楸 房舍淨暖 意緖閑曠 而躬行節祀 感痛罙切耳 卜奴命往樊川 載柴入去之後 間一日連送 柴再次旬間 又復下送 則欲卽復路 計於望日 或旣望間可以歸稅也 餘不多及 己巳 正月 二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