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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9_01_A00054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6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신야의 두 아들 신경한(申景翰, 1719~1770)과 신경악(申景岳, 1725~?) 중 일인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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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년 1월 1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辰 元月 十四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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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3 × 41.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병진년(1736) 1월 14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병진년(1736) 1월 14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2일자, 8일자 편지를 연달아 받아서 새해의 모든 안부가 다 편안하다는 점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했다. 자신도 어버이 모시며 이전대로 지내고 있고, 백동(栢洞) 측 딸의 혼사는 이달 10일에 있어서 며칠 남지 않았지만 모든 혼구(婚具)를 마련하는 일이 여전히 아득한 점이 많아서 자씨(姊氏)가 밤낮으로 마음 졸이고 절박해 하는 상황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자신의 마음도 조금도 편안하지 않다고 했다. 경과(慶科)는 정시(庭試)로 품정(稟定)되어 4월에 설행할 것이고, 별시(別試)는 가을쯤으로 물려졌으니 우선 도성으로 들어 올 생각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열심히 독서하면서 뒷날 교명(敎命)을 기다리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했다. 하인 선(善)이가 돌아가는 편에 편지를 부친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 및 자식의 학업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제목 없음
初二初八書 連得見之 知新年凡百俱安 喜不可言 吾亦侍事如昨 而栢洞女婚 在今十八 只隔數日 而凡具尙多茫然 姊氏晝夜焦迫之狀 何可言 以此此心亦不敢一時少安于中耳 慶科以庭試稟定 似當設行於四月 別試則退于秋間 姑勿生入城之意 牢坐勤讀 以竢後日敎命爲宜 憑善奴歸 只此 丙辰 元月 十四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