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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53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6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신야의 두 아들 신경한(申景翰, 1719~1770)과 신경악(申景岳, 1725~?) 중 일인
- ㆍ발급시기
-
1736년 1월 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辰 元月 四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9 × 31.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병진년(1736) 1월 4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병진년(1736) 1월 4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맨 우측 상단에는 후대의 기록으로 보이는 글씨로 “正郎公 埜 筆”을 적어두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가 발급한 간찰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새해에 어미 모시며 지내는 안부는 어떤지 묻고, 이별한지 이미 한 해가 넘었으니 서운하고 그리운 마음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잘 지낸다고 했다. 듣기에 상대가 설날 아침에 선영의 절사(節祀)에 갔었다고 하니 인사를 닦는 일에 큰 진보가 있어서 기쁘다고 하였다. 다만 말과 하인은 어디에서 빌려 마련한 것인지 물었다. 연일 어미 곁에 있는 것인지 이미 섬촌(蟾村)에 모여 있는 것인지 묻고는, 상대의 처가 안부 하인을 보낸다고 하니 우선 바삐 쓰고 다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 및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新年侍歡 卽問如何 別已隔歲 悵戀難堪 吾侍奉安遣耳 聞汝正朝 往行松楸節祀 可喜人事之長進 而但未知人馬之何以借得也 連住母側否 已會蟾村否 聞汝妻送伻候 姑忙草 不一 丙辰 元月 四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