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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52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5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과거 시험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경한의 동생인 신경악은 당시에 11세에 불과하므로 신경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 ㆍ발급시기
-
1735년 9월 2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九 二十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1.1 × 30.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묘년(1735 추정) 9월 25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을묘년(1735 추정) 9월 25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발급연도는 을묘년, 발급자는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편지를 받고 위로된다고 하였고, 자신은 병상이 점차 낫는 듯하지만 기력이 매우 노곤하다고 하면서, 이는 비록 큰 병을 앓은 뒤에 으레 생기는 증세지만 고민된다고 했다. 과거 시험의 1소방(一所榜)이 어제 이미 나왔고, 2소방(二所榜)은 오늘 오후에 나올 것이라고 하지만 기다리기 힘들다고 하였다. 국제시(菊製試)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고민되는 점이라고 했다. 하인 숙(淑)이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서 늦부(芿叱夫)를 급히 우천(牛川)에 보내 ‘장노배(庄奴輩)들로 하여금 강변에서 땔나무하라고 재촉하여 이달 그믐이나 다음 달 초반에 돌아오라’는 뜻으로 김 별장(金別將)에게 분부하였으니 또한 편지를 써서 온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힘을 합해 빨리 땔나무를 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했다. 추록에는, 1소방목을 부쳐 보낸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 및 자식의 과거시험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見書慰慰 吾病狀漸似向蘇 而氣甚困苶 此雖大病後例症 可悶 一所榜昨已出之 二所榜今午後當出云 而待之可苦 菊製尙不定之 是亦惱人 淑奴尙未入來耳 芿叱夫急送牛川 使庄奴輩催出柴木於江邊 晦初還歸之意 分付金別將處 亦爲作書 使一洞之人 合力取速出柴爲可 餘不具 九 二十五日 父
一所榜目付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