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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50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5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35년 8월 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卯 八月 八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4 × 40.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묘년(1735) 8월 8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을묘년(1735) 8월 8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본문에서 수신자의 아우로 추정되는 “觀大”를 언급하고 있어서 수신자는 발급자의 두 아들 가운데 맏이 신경한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오랫동안 편지를 받지 못해 답답하던 중에 판관 내형(判官內兄)의 행차를 통해 초하루 편지를 받고, 범(范)이가 또 경풍(驚風)을 앓았음을 들었다고 했다. 올해 우환이 이상하다 할 만하지만, 결국 모두 무사하니 또한 다행이라고 했다. 상대의 장인이 결국 거수(居水, 포폄에 下를 받음)를 받는 욕을 당했다고 하면서, 욕을 당하는 일도 특수한 일인데 낭패가 더욱 크다고 했다. 상대가 병으로 끝내 장인에게 가지 못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도리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관대(觀大)와 수득(壽得)을 오랫동안 내려 보내려고 했지만 인편을 찾기가 쉽지 않다가 이제 내형이 돌아가는 편을 통해 따라가라고 했으니 상대가 기뻐할 것이 상상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여러 날 배를 타게 되어 건강을 상할 듯하니 염려된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여전히 지내고, 추석에 만일 영릉(寧陵) 제관(祭官)에 차출된다면 가족이 모일 날도 머지않을 것이나 기필할 수 없다고 했다. 보내온 3편의 시를 보니 전에 비해 나아진 바가 없으니 한 해 동안 독서를 폐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냐고 했다. 진사 종씨가 추석에 영소하러 가고자 하니 그때 단암(丹巖)에 들릴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 또는 가족 및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久不見書 殊鬱 判官內兄行 獲見朔日書 聞范也又經驚風 今年憂患 可謂異常 而畢竟俱無事 亦可幸也 汝之岳丈 終見居水之辱 辱固非常 而其狼狽尤大矣 咄歎奈何 汝以憂患 終不得去 到今思之 不去還幸耳 觀大及壽得 久欲下送 而憑便未易 今因內兄歸 使之隨往 可想汝之歡喜 而多日船上 恐致傷損 是慮 吾侍事如昨 秋夕●若●差祭寧陵●● 則團聚在邇 而亦何可必也 所送三詩見之 而比前無所勝 一年廢讀 安得不然 可嘅 進士從氏 欲於秋夕榮掃利川 其時似可歷入丹巖也 只此 乙卯 八月 八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