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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49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5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35년 5월 23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卯 五月 卄三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 × 44.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묘년(1735) 5월 23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을묘년(1735) 5월 23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상단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고 “答翰兒”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수신자는 신야의 아들인 신경한(申景翰, 1719~1770)으로 볼 수 있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이곳에 온 뒤 소식을 듣지 못해 걱정이 쌓여가던 중에 19일자 편지를 받고 상대의 병이 덜해졌다는 점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상대 아우의 병은 아마도 회생할 가망이 없으니 하늘만 믿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어미가 병든 와중에도 여러 날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큰 병이 날 것 같다고 하면서, 상대는 우선 섬촌(蟾村)으로 가지 말고 어미 곁에 있으면서 우환이 조금 나아지길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자신은 배를 출발한 다음날 오시(午時)에 입성하여 이제 막 직소(直所)에 있고, 관대(觀大)도 잘 있다고 했다. 김매(金妹)는 여러모로 일이 많이 생겨 함께 배를 타고 오지 못했다고 했다. 부채 하나와 지종(智從)이 보내주라고 한 도자(刀子)를 보낸다고 하였고, 상대의 소식을 듣고자 하인 한 사람을 일부러 보낸다고 했다. 추록에는, 이 편지에 동봉된 섬촌으로 보낼 편지는 조용히 전송하고 답장을 받아 보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 또는 가족 및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答翰兒 [手決]
來後無聞 憂慮日積 卽得十九書 知汝病向減 可喜 汝弟之病 似無回甦之望 所恃者惟天耳 汝慈病憊之中 積日勞瘁而焦慮 恐生大病 尤可悶也 汝姑勿往●(會)蟾村 留侍母側 以竢憂患稍霽爲宜 吾發船翌午入城 方在直所 觀亦好在耳 金妹事故多端 不得同舟而來耳 一扇送之 此去刀子 卽智從送汝之物 故竝送之耳 爲聞消息 委送一伻 不一 乙卯 五月 卄三日 父
此去蟾村候書 從容傳送 不必受答以送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