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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47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5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신야의 두 아들 신경한(申景翰, 1719~1770)과 신경악(申景岳, 1725~?) 중 일인
- ㆍ발급시기
-
1735년 1월 1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卯 元月 十八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7.7 × 40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묘년(1735) 1월 18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을묘년(1735) 1월 18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서로 떨어져 지낸지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나니 그립다고 하면서, 지난번 교관 내형(敎官內兄)의 행차를 통해 4일자 편지를 받고 단암(丹巖)에서 모여 해를 보내며 잘 지내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새해가 된 뒤 추위가 엄동설한같이 심한 이때에 그간 안부는 다시 어떠하냐고 물었다. 어제 상대의 생일이었으니 멀리서 더욱 생각난다고 하면서, 같이 모이지 못하고 보내니 더욱 서운하다고 했다. 어미의 치통과 두통은 요즘 다시 어떠한지 묻고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해 근심된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이전대로 지내고 있고, 막내 누이 또한 와서 함께 있으니 기쁜 일이지만 기침병으로 여러 날 힘들어하니 고민된다고 했다. 상대가 보내준 시축(詩軸)을 보니 전에 비해 조금 나아졌다고 하면서, 반드시 때때로 시 짓기를 폐하지 않는다면 크게 진일보하기를 기약 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맹자』는 이제 무슨 편을 읽고 있는지 묻고, 또 나이 한 살 더 먹었으니 더욱 분발하여 이전의 나태하고 방탕했던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날로 얻는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도 기쁠 것이라 했다. 장식을 고친 입자(笠子)와 비누통[飛陋筩]도 보낸다고 했다. 나머지는 하인 동(同)이가 돌아가는 인편을 통해 바삐 부친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 또는 가족 및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相離居然閱歲 戀思曷言 頃因敎官內兄行 得初四書 審來會丹巖 過歲安吉 慰喜慰喜 歲後寒威 猛於嚴冬 其間安否更如何 昨經汝生朝 遙念益耿耿 而不得會合以過 尤爲悵然耳 汝慈齒痛頭痛 近復如何 更無所聞 憂鬱不可狀 此中侍事如昨 末妹亦來會 可喜 而妹以咳嗽 累日苦劇 是悶 詩軸見之 比前稍勝 須時時吟詠不廢 期於長進爲好也 孟子方讀何篇耶 又添一齒 益自奮勵 毋若前日之懈怠放逸 則非但於汝日有所得 其所以悅吾●心者 亦當如何耶 笠子改●(修)飾以送 飛陋筩亦送之耳 餘因同奴之歸 忙甚只此 乙卯 元月 十八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