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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44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4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신야의 두 아들 신경한(申景翰, 1719~1770)과 신경악(申景岳, 1725~?) 중 일인
- ㆍ발급시기
-
1734년 8월 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寅 八月 朔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4 × 4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인년(1734) 8월 1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아들에게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갑인년(1734) 8월 1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맨 우측 상단에는 후대의 기록으로 보이는 펜글씨로 “正郎公”을 적어두었는데, 간첩에 포함된 여타 간찰을 통해 정랑공은 신야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이곳에 온 뒤 소식이 없어 날로 그리움이 깊어지던 차에 인편을 통해 편지를 받고 새로 서늘해진 이때에 탈 없이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잘 지내고, 동생의 설사병도 멎었으며, 백동(栢洞) 자씨(姊氏)와 김매(金妹)‧이매(李妹)도 모두 모여서 지내니 사뭇 즐거운 마음이라고 했다. 김매는 모레 자신이 나가는 길에 따라서 갈 것인데 추석과 상치되는 연유로 귀포(龜浦)로 내려가 형편상 단암(丹巖)에서 함께 모이기 어렵다고 하였다. 머지않아 서로 만날 것이라고 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來後無聞 戀念日深 便至得書 審新涼 無恙做工 慰豁何言 吾侍奉安遣 汝弟泄病亦歇 栢洞姊氏及金李諸妹 皆會以過 殊覺欣滿 金妹則再明吾行 可以隨去 而以秋夕相値之故 當下於龜浦 勢難同會於丹巖矣 匪久相見 只此 甲寅 八月 朔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