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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42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신야의 두 아들 신경한(申景翰, 1719~1770)과 신경악(申景岳, 1725~?) 중 일인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5 × 22.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미상년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맨 좌측 일부가 결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에 발급 연월일이 기재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자봉(自封)으로, “答兒”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발급자는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편지를 받아 보고 위로된다고 하고, 아이의 병은 식후에 갑자기 붉은 기운이 온 몸에 올라 마치 반진(癍疹)이 은근히 피어오르는 듯했었는데, 이제 반점이 나려는 증세는 사그라진 듯하나 붉은 기운은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으니 아마도 열이 올라 그런 듯하다고 했다. 어미에게 금은화차(金銀花茶)에 소아청(小兒淸)을 타서 복용시킨다면 잘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말은 처음엔 빌려 타려고 했는데, 출입하는 데에 매우 게을러져 우선 그만두었고, 내일이나 모레 쯤 한가할 때 빌려 타고 갈 것이라는 의사를 주인에게 언급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 또는 가족 및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答兒
見書爲慰 兒病食後忽然紅氣遍身 若有癍疹隱暎欲發者 今則癍意似消 紅氣猶未盡祛 似熱盛所致 使其母於金銀花茶 調小兒淸服之 ●●●●●(未及試之耳)能善飮云耳 驢子初欲借騎矣 出入甚倦 今姑置之 明或再明間隨閑 一借之意 言及主人 爲好耳 只此 ■…■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