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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39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4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34년 11월 1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寅 十一月 望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6.8 × 40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인년(1734) 11월 15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아들 신경한에게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갑인년(1734) 11월 15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지난 그믐 덕흥(德興)이 돌아오는 편에 편지를 받아보고 상대가 잘 돌아갔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 뒤 인편이 없어 답장을 하지 못하다가 순동(順同)이 온 인편으로 또 편지를 받고 집안 모든 근황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편안히 지내고 있고, 동지절사(冬至節祀)에 제관(祭官)으로 차출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나 아직 기필할 수 없다고 했다. 어제 상대 장인의 편지로 상대를 데려가고자 말을 보낼 계획이고 이미 관아에 도착했을 것인데, 길도 익숙지 않은데다가 길이 험하고 날도 추우니 잘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기왕 멀리 가는 것이니 반드시 조용히 거처하며 글 읽기를 그치지 말고 전날 범범히 지내던 모습대로 지내지 말라고 했다. 올해는 봄부터 겨울까지 부질없이 놀기만 일삼고 한 권의 책도 전공하지 않았으니 어찌 두렵고도 부끄럽지 않겠냐고 했다. 장인도 새로 무거운 병에 걸려 필시 직접 가르치지 어려울 것이나 상대들이 배울 수 있을 만한 곳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날마다 책을 가지고 유진사(兪進土)의 집으로 가서 배송한 뒤에 가르침을 받으라고 하는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관직생활의 근황이나 자식의 학업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去晦德興還見書 知好歸 可幸 其後無便 不得答 順同來 又獲書 審家內諸況 慰喜慰喜 吾侍奉安遣 欲趁冬至差祭還鄕 而姑未可必耳 昨見汝岳丈書 則欲送馬邀汝計 已起程到衙 汝不習行路 而路險日寒 何以得達耶 憂念不可言 旣已遠去 須靜處一室 咿唔不輟 毋若前日之悠泛 至可至可 今年則自春至冬 專事浪遊 無一冊專工者 豈不可懼而可媿乎 汝岳丈新經重患 必難親敎●(授) 汝輩無可師受處 須逐日挾冊 往兪進土家 必背誦而後受敎 又作書圖 逐日塡書 其通不通 因便付送 則可知汝之勤慢 須依此爲之 可也 此去淸衙書 汝發呂行後 自呂轉來 故今始送之 慶興書亦送之 李永同所遭 慘惻何言 因爲父訟寃之章 時臺摘抉文字 而配之絶島 雖寃奈何 刀鞘送之非難 而無刀空鞘 用之何處耶 玆不送之 適聞有便 裁書送壺洞 果能卽傳否 只望愼疾勤讀 只此 甲寅 十一月 望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