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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9_01_A00037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4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34년 7월 2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寅 七月 卄二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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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4.7 × 2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인년(1734) 7월 22일에 신야가 아들인 신경한에게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갑인년(1734) 7월 22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우측에 별도의 피봉이 함께 배접되어 있고 “寄翰兒”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수신자는 신야의 아들인 신경한(申景翰, 1719~1770)으로 볼 수 있다. 그 아래에 적힌 “필대”는 미상이나 같은 집안 소장 간찰 가운데 “觀大”라는 인물이 있는 것으로 보면 필대는 신경한의 아명(兒名) 또는 이명으로 추정된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불볕더위가 갈수록 심해지는 이때에 그간 더위는 먹지 않았는지, 시(詩) 짓기는 몇 수(首)나 얻었는지 등을 묻고, 자신은 올 적에 귀포(龜浦)에 묵었다가 김매(金妹)와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병을 치료하려고 한 것이라 했다. 일행은 모두 잘 도착했고, 관대(觀大)도 병이 더치지 않았으며, 어머니의 안부와 위아래 두 집 모두 편안하다고 했다. 나머지 사연은 하인 복(福)이가 잘 전해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 또는 가족 및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제목 없음
寄翰兒 필대 [手決]
日間炎熟 去而愈酷 其間能免飮暑之患 而做得幾首詩耶 日夕憂念不可狀 吾來時宿龜浦 率金妹及其兩子而來 蓋欲爲治病計也 一行大都安稅 觀病亦無加 此中慈候及上下兩家皆安 可幸 餘憑福奴歸 悤悤只此 甲寅 七月 卄二日 父
